지난 10월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 발발 후 허위정보가 소셜미디어에 범람하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거대 플랫폼 사업자들이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지키기 위해 어떤 조처를 취했는지에 대한ㄴ 조사에 착수했다. 지난 8월 규모가 큰 19개 사업자를 대상으로 적용이 시작된 DSA는 불법 콘텐츠에 노출되는 이용자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플랫폼 사업자에 콘텐츠 관리 권한과 의무를 부여하고, 위반할 경우 과징금 등 강력한 처벌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엑스(옛 트위터), 메타, 틱톡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은 곧바로 계정과 게시물 삭제, 댓글 제한, 라이브방송 중단 등 DSA 규정 준수를 위한 각종 조치들을 내놓았다. 현재까지 DSA를 통한 EU의 허위정보 억제 노력은 일정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사장 김효재)은 11월 30일 <미디어정책리포트> 2023년 제5호 ‘EU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관련 허위정보 대응과 시사점’을 발간했다. 이번 보고서는 EU가 새로 제정한 DSA를 무기 삼아 허위정보에 대응하는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할 것을 빅테크 플랫폼 기업들에 요구한 가운데, 이러한 규제 방안이 한국 상황에 시사하는 바를 검토했다. 보고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근 DSA가 허위정보 규제의 모범사례로 소개되면서 국내에서도 유사한 성격의 법제 운용이 가능한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DSA와 같은 법령을 제정하고 실효성을 확보하는 데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법 체계가 유럽과 상이한 한국에서 DSA와 같은 법령을 제정했을 때 기존 법률과의 충돌 또는 중복이 발생할 수 있으며, 정치적 논란을 초래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체 플랫폼이 발달하지 않은 유럽과 달리 강력한 토종 플랫폼을 가진 한국은 법 제정 과정에서 반발이 클 수도 있다. 시장 규모가 유럽보다 작아 사업자들이 규제를 수용할 동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 같은 이유로 전문가들은 ‘한국판 DSA’ 제정에 대체로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DSA 제정에 이르게 된 EU의 문제의식은 허위정보 확산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도 똑같이 유효하다. 선진적 규제 체계로서 DSA를 참고하여 한국 사회에 가장 효과적이고 적합한 허위정보 규제 방안을 설계하는 시도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명심해야 할 부분은 DSA의 규제 대상이 콘텐츠가 아니라 플랫폼이라는 사실이다. 이용자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콘텐츠를 관리하도록 플랫폼에 의무를 부과하고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DSA의 핵심 내용이다. 이처럼 글로벌 규제 체계는 국가가 콘텐츠 관리에 직접 개입하기보다 중개서비스 제공자로 하여금 예방 장치를 마련하도록 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에서도 플랫폼 사업자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가운데, DSA의 방향성을 참조해 규제 체계 개선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나가야 한다.
이 같은 내용의 <미디어정책리포트> 2023년 5호 “EU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관련 허위정보 대응과 시사점”은 한국언론진흥재단 홈페이지(www.kpf.or.kr → 미디어정보 → 정기간행물 → 미디어정책리포트)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