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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의 성평등 재현 위한 풀뿌리 캠페인
BBC ‘50:50 평등 프로젝트’

등록일 : 2021-11-03

2017년 직원들의 성별 임금 격차로 논란을 빚었던 BBC는 이후 미디어 출연진의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50:50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시사하는 바와 우리 미디어가 주목해야 할 점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BBC는 2017년부터 미디어상의 성차별 극복을 위해 여성의 출연 비율을 추적 관찰하는 성평등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 참여를 결정한 제작진은 매달 여성 출연 비율을 조사해, 목표치인 50%에 도달했는지 확인하고 다음 제작에 참고한다. 남녀를 동등하게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의미에서 ‘50:50’이라 이름 붙인 이 프로젝트는 이제 BBC를 넘어 외부 조직에까지 확산하고 있다.

 

왜 BBC에 성평등 캠페인이 필요했을까


BBC는 국민이 내는 세금인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적 서비스 방송이다. 따라서 정보 제공과 교육, 엔터테인먼트로 나뉘는 서비스 분야에 다양한 국가와 인종, 젠더, 연령으로 구성되는 수신료 납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할 공적 책무를 지닌다. 정치적으로는 불편부당(impartial)해야 하며, 질 좋고 독창적인 방송 콘텐츠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1)


미디어의 성평등을 추구하는 ‘50:50 프로젝트’는 BBC의 공익성에 부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전사 차원으로 도입할 당시엔 내부적으로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취지는 좋지만 당시 BBC를 강타한 임금 성차별 스캔들에 대한 면피용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2)

 

이전에도 BBC는 성·젠더·인종 재현 시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종종 받았다. 하지만 임금 성차별 문제는 개개인의 연봉이 구체적으로 밝혀진 적이 없어 공개적으로 논의된 적은 없었다. 문제가 된 시점은 2017년 7월, BBC가 역사상 최초로 15만 파운드(약 2억 4,000만 원) 이상을 받는 고액 연봉자 명단을 공개하면서부터다. 새롭게 BBC의 규제 기관이 된 오프콤(Ofcom)이 임금 실태 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여성은 명단의 3분의 1 정도로만 포함돼 있었고, 평균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9.3% 정도의 임금을 더 받고 있었다.3)


이 사실은 BBC의 여성 출연진의 거센 반발을 샀다. 성차별에 항의하는 공동 서한을 경영진에 보내고 몇몇은 BBC의 임금 성차별 문제를 정치권에 고발했다. BBC 뉴스 중국 지역 편집장인 캐리 그레이시(Carrie Gracie)가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는데, 고위직이었던 그녀는 남성 동료에 비해 자신이 50%나 덜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전격 사임했다. 이후 영국 하원의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부(DCMS, Department for Digital, Culture, Media & Sport) 청문회에 출석해 BBC 내부의 성차별 문화를 직접 고발했다. 4)

 

상황이 심각해지자 BBC 경영진은 공개 사과와 함께 사내 여성 정책에 대한 몇 가지 개선책을 내놨다. 남성 출연진의 임금을 삭감하고 여성에 대한 보상을 늘릴 것과 다양성 증대를 위해 BBC 방송 프로그램의 여성 재현을 남성과 같은 수준으로 늘릴 것을 약속했다. 이 과정에서 경영진의 관심을 끈 것이 공교롭게도 임금 성차별 스캔들이 터지기 직전 시작된 로스 앳킨스(Ros Atkins)의 50:50 프로젝트였다.

 

풀뿌리형 캠페인으로 시작된 50:50 프로젝트


BBC의 프라임타임 시사 프로그램 <아웃사이드 소스(Outside Source)>를 진행하는 유명 앵커 로스 앳킨스는 우연한 계기로 성평등 캠페인을 시작하게 됐다. 그는 2016년, 부모님을 뵈러 가던 길에 자동차에서 우연히 들은 한 시간짜리 라디오 프로그램에 여성이 단 한 명도 출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5) 다음 해 1월, 그는 자신이 몸담은 뉴스 프로그램에서부터 여성의 출연을 늘리기 위한 ‘풀뿌리형’ 방식을 고안해 낸다. 제작진이 직접 방송에 등장한 남녀 출연진의 수를 정기적으로 조사해, 이후 섭외 과정에서 출연진의 성별 균형을 맞추는 참고 자료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로스 앳킨스는 “(이러한 방식의) 핵심은 우리 스스로를 조사 관찰해 조직을 위한 데이터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동시에 우리 자신의 (평등한 재현에 대한) 동기, 인식, 수행성에 영향을 받게 하는 것이다. 데이터는 변화의 동력이 될 것이다”6)라고 했다.

 

조너선 예루살미(Jonathan Yerushalmy) 편집인과 레베카 베일리(Rebecca Bailey) 프로듀서가 그 취지에 공감하면서 2017년 1월, 한 달간 세 사람을 중심으로 실험이 진행됐다. 집계 대상은 인터뷰 대상자, 기자, 분석가, 게스트 등 제작진이 섭외 과정에서 ‘통제할 수 있는 대상’에 한정했다. 조사는 매일 평균 2분 정도의 짧은 시간 내에 이뤄졌는데, 한 달 동안 기록된 수치의 변화를 다른 팀 구성원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스프레드시트에 기록했다.

 

그렇게 집계된 쇼의 여성 기여자 비율은 39%로 목표치보다 확실히 낮았다. 이에 자극받은 <아웃사이드 소스>팀은 출연진 구성 방식을 바꾸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BBC 전역의 편집자들에게 연락해 뉴스 프로그램 등장 주제에 대해 전문적인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여성 전문가 목록을 작성해 섭외에 참고했고, 여성들이 오전 시간이나 저녁 프라임타임에는 집안일로 바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섭외 전화를 거는 시간을 변경하기도 했다.

 

이후 해당 쇼에서 여성 출연진 비중은 프로젝트 시작 3개월 만인 2017년 4월 51%로 급증했으며, 이후 여름까지 50% 이상 유지됐다.7) 출연진 성별 조사가 이전까지 적었다는 점에서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지만, 자료수집 방식과 이후의 추적 관찰 과정 전반에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실제 변화를 끌어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사례가 아닐 수 없다.

 

 

BBC 파트너 조직 ‘미디어 트러스트’의 수메이 톰슨과 크리스 피케는 “50:50 프로젝트는 여러 사람의 열정으로 추진됐는데, 이야말로 긍정적 변화가 유지될 수 있었던 최고의 비결이었다”고 말한다. <출처 - https://www.bbc.com/5050/documents/50-50-impact-report-2021.pdf>;

 

 

BBC 공식 캠페인이 되기까지 

논란과 성과

 

<아웃사이드 소스> 제작진이 올린 성과는 BBC 내부에서 금세 주목받게 됐다. 이들을 따라 50:50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팀이 늘면서 자연스레 남녀의 출연 비율을 50:50으로 맞추는 방식에 대한 의견도 다양해졌다. 뉴스 프로그램에서 여성 출연을 늘려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일부는 출연진 섭외에서 성비를 고려하다가 쇼에 최고로 공헌할 수 있는 남성 전문가를 놓쳐 “BBC 저널리즘의 질 저하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자 중에서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미친” 기획이라고 혹평한 이들도 있었다.

 

여성 구성원의 우려는 다른 방향으로 기울여졌는데, 앞서 언급한 BBC의 임금 성차별 스캔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로스 앳킨스와 같은 백인의, 이성애자 남성에 의해 주도되는 50:50 프로젝트를 확대하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면피 작전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비판들에 대해 로스 앳킨스는 BBC 홈페이지에도 공개된 문답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100:0이 아닌 50:508)’, 다시 말해 어느 한 성별의 배제가 아닌 양쪽의 평등을 목표로 한다며 의도에 대한 비난을 차단하는 한편, 저널리즘의 질 저하는 “(프로그램) 품질에 절대 타협하지 않는” 태도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그램에 최고로 공헌할 수 있는 출연진의 경우, 성별에 관계없이 섭외될 수 있다는 일종의 예외를 둔 것이다.

 

이후 2018년 4월에 이르기까지 BBC 내부적으로 80개 이상의 팀이 50:50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그 성취를 눈여겨본 당시의 토니 홀(Tony Hall) BBC 사장은 로스 앳킨스와 면담을 가진 후 50:50 프로젝트를 뉴스와 시사뿐 아니라 다른 모든 BBC 방송 제작 분야에 확대하는 BBC 공식 캠페인으로 승격시킨다.

 

시청자도 느끼는 긍정적 변화

 

현재 BBC에서 50:50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팀은 670개에 이르는데 2021년 3월 조사에서 이들 중 70%가 여성 출연 비율을 50% 이상 도달시키는 데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9) 나머지 30% 중 20%의 조직들도 조사 기간 동안 40%대로 출연 비중을 끌어올렸다.

 

지난해부터는 BBC 내부적으로 ‘일관성(Consistency)’이라는 새로운 목표도 추진하고 있다. 여성 출연 비율 과반을 적어도 3개월 이상 유지하는지 역시 추적 관찰하겠다는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10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이러한 일관성 목표를 충족한 조직은 40% 수준이다. BBC는 조사 영역을 인종과 장애 재현으로까지 확대하는 실험도 하고 있는데, 현재 220개 팀이 참여해 여성, 다인종, 장애인 출연 비율을 각각 50%, 20%, 12%로 도달시키는 것을 목표로 조사 영역을 세분하고 있다.

 

이러한 50:50 프로젝트의 성과는 수용자 반응에서도 확인된다. BBC가 2021년 2월, BBC 이용자 2,18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62%는 BBC 프로그램에 여성이 더 많이 출연하는 것을 느꼈다고 답했다. 여성 출연이 늘어난 것과 관련, 16~34세 응답자의 44%는 이러한 변화로 인해 BBC 프로그램에 더 흥미를 갖게 됐다고 밝혔다. 16~34세 여성 응답자 집단은 특히 더 긍정적 반응을 보였는데, 이들 중 58%가 여성 출연이 늘어 BBC 서비스를 더 이용하게 됐다고 답했다.

 

BBC의 긍정적 변화에 고무된 외부 조직들도 50:50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이제 이 프로젝트는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지난 4월 발표된 <BBC 50:50 프로젝트 영향력 보고서>10)에 따르면 26개국 100개 조직이 파트너로 프로젝트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유니레버, PwC 등 민간 기업의 참여 외에도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 학생들이 경력을 시작하기 전 젠더 감수성을 높일 수 있도록 교육하는 데 지원하고 있다. 이들 중 41개 조직은 BBC와 동일한 방식으로 자체 미디어의 성별 출연 비중을 조사했는데, 프로젝트 실시 후 이들 중 절반이 여성의 출연 비율을 50% 이상으로 높이는 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팀 데이비(Tim Davie) BBC 사장은 보고서 발간의 변에서 50:50 프로젝트가 “창조산업 전반뿐 아니라 그 너머 영역에 이르기까지 문화적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동해 왔다”며 확장성을 강조한다.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시작된 풀뿌리형 캠페인이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성장에도 기대를 걸게 된다.

 

 

 

 

 

1) https://www.bbc.com/aboutthebbc/governance/mission

2) Rattan, A., O. Georgeac, and Chilazi, S. <Ros Atkins and the 50:50 Project at the BBC>, London Business School, 2020, https://publishing.london.edu/cases/ros-atkins-and-the-5050-project-at-the-bbc-a

3) <BBC pay: What else did we learn?>, BBC NEWS, 2017.7.20, https://www.bbc.com/news/entertainment-arts-40668359

4) <Carrie Gracie tells MPs of BBC pay 'insult'>, BBC NEWS, 2018.1.31, https://www.bbc.com/news/entertainment-arts-42885693

5) Rattan, A., Georgeac, O., & Chilazi, S., <Ros Atkins and the 50:50 Project at the BBC>, London Business School, 2020, https://publishing.london.edu/cases/ros-atkins-and-the-5050-project-at-the-bbc-a

6) <The 50:50 story>, BBC, https://www.bbc.com/5050/aboutus/ourstory

7) <The 50:50 story>, BBC, https://www.bbc.com/5050/aboutus/ourstory

8) Rattan, A., Georgeac, O., & Chilazi, S., <Ros Atkins and the 50:50 Project at the BBC>, London Business School, 2020, https://publishing.london.edu/cases/ros-atkins-and-the-5050-project-at-the-bbc-a

9) <50:50 Equality Project Impact Report 2021>, BBC, 2021.

10) <50:50 THE EQUALITY PROJECT – IMPACT REPORT 2021>, BBC, https://www.bbc.com/5050/documents/50-50-impact-report-2021.pdf

  • 필자 : 김지현
  • 소속 :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학
  • 직함 : 박사
  • 발행 : 2021-11-03
  • 조회수 : 812
  • 키워드 :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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