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2021-05-10
탈진실 시대에 진실 찾는 법, ‘무지의 자각’

탈진실 시대에 진실 찾는 법, ‘무지의 자각’

  • 저자 : 구본권
  • 발행일 : 2021-05-10

《리얼리티 버블》 Ⓒ 코쿤북스

 

매사추세츠공대(MIT,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에 미디어랩을 설립해 초대 소장을 지낸 니컬러스 네그로폰테(Nicholas Negroponte) 교수는 1995년 저서 《디지털이다(Being Digital)》를 통해 디지털이 중심이자 변화의 동력이 되는 미래를 일찌감치 선언했다. 그는 디지털과 인터넷 기술이 펼칠 미래를 지나치게 낙관했다. 네그로폰테는 1997년 “인터넷은 국경을 없애고 세계 평화의 안내자가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인터넷이 빠르게 확산해 대중화하던 시기 인터넷은 생활과 산업을 혁신시킬 뿐 아니라, 활발하고 새로운 소통 방식을 통해 전쟁을 추방하고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광범한 기대를 받기도 했다. 분쟁과 갈등이 소통 단절로 인한 오해와 상호 이해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본 탓이다. 원활한 소통 수단은 평화로 이어지고, 풍부한 정보는 더 많은 사람을 지혜롭고 상식적으로 만들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인터넷만이 아니라, 평화를 가져올 도구로 기대를 모은 기술과 제품은 다양하다. 기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무선전신과 전보가 발명됐을 때도, 전화가 개발됐을 때도 비슷한 기대가 있었다.

 

인터넷에 이어 소셜미디어, 알고리즘, 인공지능이 등장해 사람들의 소통과 연결을 더욱 편리하고 강력하게 바꾼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현실은 20여 년 전 기대와 사뭇 다르다. 기술 덕분에 정보 접근과 소통이 원활해진 것은 분명하지만,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은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로 인한 갈등과 분쟁도 심해지고 있다. 급기야 지금은 ‘탈진실(Post Truth)’ 시대로 불릴 정도다. 탈진실 현상은 사실 추구와 합리성이 무시되고, 조작된 거짓 정보가 사실의 자리를 위협하거나 대체하는 현실을 의미한다.

 

언론 활동은 온전한 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이다. 이를 위해 흩어진 팩트의 파편을 수집하고 사실의 모습을 사후적으로 재조합해내는 일을 수행한다. 언론의 사명과 존재 이유가 진실 추구라는 것은, 사실 보도가 개인과 사회의 인식에 영향을 끼치는 힘을 갖고 있다는 전제와 믿음 위에 서 있다. 그런데 사실이 힘과 가치를 잃어버려가고 있는 탈진실 세상에서 사실을 추구하는 언론의 처지와 미래는 암울하다.

 

더욱이 탈진실 현상이 이를 유행어로 만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같은 돌출적 인물의 영향으로 생겨난 일시적 현상일 뿐이고 관련 인물의 퇴장과 함께 사라질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에 이르면 언론의 미래는 더욱 어둡다. 오늘날 언론의 역할과 가치가 추락하고 있는 배경에는 언론의 잘못도 원인으로 있고, 숨 가쁜 기술과 시대 변화도 있다. 언론이 사실 전달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데도 원인이 있지만, 좀 더 본질적 질문이 필요하다.

 

풍부한 사실 정보가 주어지면 사람은 이를 제대로 받아들이는 능력과 태도를 갖추고 있느냐는 물음이다. 우리가 감각기관과 인지 기관을 통해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절차는 사실의 정확한 인식을 보장하는가. 이 물음은 철학의 주요 분과인 인식론의 오랜 주제이고, 현대 인지과학의 주된 영역이다. 최근 발간된 《리얼리티 버블》은 이에 대한 풍부하고 흥미로운 접근법을 제공하는 책이다. 캐나다의 과학저널리스트 지야 통(Jiya Tong)이 2019년 펴낸 《리얼리티 버블》은 2021년 1월 국내에 번역·출간됐다. ‘우리의 현실을 바꿀 보이지 않는 것들의 과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우리의 불완전한 인지 왜곡은 과연 정보기술 때문인가

 

‘필터버블’이라는 말은 일라이 파리저(Eli Parisa)가 2011년 펴낸 《생각 조종자들(원제 The Filter Bubble)》을 통해 알려지고, 이후 소셜미디어 서비스와 인공지능 알고리즘 기반 정보 환경에서 이용자들의 편향적 인식을 설명하는 대중화한 용어가 됐다. 인터넷 정보환경에서 우리의 인식이 정보 기술 업체들의 알고리즘에 의해 걸러지고 그 결과 편향된 지각과 생각을 갖게 된다는 것을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설명해낸 덕분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이루다’와 같은 인공지능 채팅 서비스의 성 편향적 문답을 통해, 알고리즘과 필터버블이 지닌 위험성이 널리 알려졌다.

 

정보화 세상은 우리가 정보기술의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인지 거품(필터버블)’에 갇혀, 편향된 지각과 인식에 빠지기 쉽다는 걸 일깨웠다. 하지만, 탈진실로 대표되는 우리의 불완전한 인지와 왜곡은 과연 정보기술 때문인가. 알고리즘과 필터버블이 우리의 인지를 왜곡시킨 범인이고, 그 ‘사악한 기술’이 없었다면 우리의 인지는 합리성을 기반으로 정상 작동할 수 있는가. 《리얼리티 버블》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아니다”라고 답한다. 인간은 정보기술로 인해 최근 생겨난 현상인 필터버블 이전부터 왜곡된 인지에 사로잡히는 성향을 본능적으로 지닌 존재라는 점을 강조한다. 작가 지야 통은 우리의 인지가 ‘리얼리티 버블’에 갇혀 있다고 말한다. 작가가 말하는 ‘리얼리티 버블’은 “일상 세계에 대한 생각을 형성하는 심리적 거품”으로, ‘현실 거품’을 의미한다. 진실을 인식할 수 없게 만드는 왜곡의 안경이지만, 이를 걷어내면 인간의 생각과 인지가 불가능해지는 사실상 생존의 필수적 도구다.

 

사실 인간은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볼 수 없고 오로지 스스로 구성한 개념과 인지의 틀을 통해서만 제한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과학과 철학에서 오래전에 확립된 합의다. 플라톤이 인간 인식의 한계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한 ‘동굴의 비유’를 비롯해, 인간은 인식의 대상 자체를 절대로 알 수 없고 대상의 자극을 기반으로 스스로 형성해낸 의미의 구성물만을 알 수 있다고 임마누엘 칸트의 구성주의 인식론이 알려줬다. 철학만이 아니라 과학적 세계관의 토대기도 하다. 저자는 “지각의 행위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진짜 세계를 추정하는 것이 물리학의 기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알지 못한다”는 아인슈타인의 발언을 인용한다.

 

지야 통은 이러한 인식론의 오래된 통찰과 개념을 현시대에 적합한 과학적 사례와 방법론을 통해 일깨운다. 그는 인간은 실체를 보거나 인식할 수 없으며, 인간 인지능력은 다양한 한계 속에서 결함과 편향을 지니며 형성된 ‘현실 거품’에 갇히게 마련이라고 주장한다. 인간과 다른 감각 능력을 활용하는 개나 박쥐, 돌고래는 외부 세계를 인지하는 방식 또한 다르고, 당연히 그 인지적 구성물인 생각과 느낌 또한 다르게 마련이다. 그가 주목하는 인간의 인지적 구성 능력은 너무나 뛰어나다는 점에서 문제가 생겨난다. 인간의 인지적 능력은 없는 것도 본 것처럼 만들어내며, 명확하게 보이는 사실도 보지 못한 것처럼 만드는 특성이 있다. ‘현실 거품’은 우리가 현실을 왜곡되게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인간이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그 안에서 세상을 볼 수밖에 없는 ‘인지적 보호막’이기도 하다.

 

‘현실 거품’이란 인지의 맹점 깨달아야

 

특히 인간은 보기로 마음먹은 것과 선호하는 생각 위주로 현실을 만들고 그 안에서 선택적으로 인지하고, 생각을 형성한다. 그가 인간 인지능력의 특성으로 제시하는 것은 우리 눈의 맹점이다. 망막에 시신경이 모이는 지점은 인간 시야에서 ‘맹점’이다. 하지만 우리 시각은 탁월한 포토숍 능력을 발휘해 맹점으로 인해 볼 수 없는 부분마저 적절한 색깔과 형태로 메워내 그 흔적을 없애버린다. 문제는 이러한 지각의 포토숍 효과가 시각에 그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의 인지 과정 전반에 걸쳐 맹점이 존재하지만, 시각의 포토숍 효과처럼 덧기운 흔적 없이 보이지 않게 된다. 맹점으로 인해 시야에 구멍이 뚫리지 않는 것처럼 덕분에 인간의 인지는 매끄럽고 편안하지만, 축복인 것만은 아니다. 작가는 “달갑지 않은 사실들과 낯선 생각들은 현실 거품을 뚫고 들어가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현실 거품은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바깥에 있는 힘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함으로써 우리가 각자 많은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한다.

 

정보기술에 의한 필터버블 이전에도 고대 이집트인들은 태양신과 파라오의 불멸을 믿었으며, 중세 시대 유럽인들은 신과 면죄부를 신뢰했다. 선조들은 귀신과 조상의 가호를 믿고 제사를 지냈다. 과학적 사고는 우리가 형성하고 있던 현실 거품을 찌르는 날카로운 도구로 기능했다. 하지만, 과학적 사고에서도 ‘현실 거품’을 벗어던지는 일은 어려운 것을 넘어 치명적으로 위험한 행위였다. 갈릴레이가 대표적 사례다. 저자는 “갈릴레이의 천재성은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의 한 조각에 불과함을 알아차린 것”이라며 “갈릴레이는 현실 거품을 찔러 구멍을 냈고, 그로 인해 처벌을 받았다”고 말한다.

 

세상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각자가 그리고 동시대의 사회가 지닌 인지적 편향과 한계를 자각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만드는, 인지적 맹점을 자각하는 일이다. 저자는 현대의 우리를 지배하는 알고리즘이 우리의 맹점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인지의 맹점인 ‘현실 거품’을 벗어나는 출발점은 인간 인지의 결함과 맹점의 존재를 깨닫는 것이다. 바로 소크라테스가 말한 ‘무지의 자각’이다.

 

지금은 2500년 전 소크라테스가 일깨운 ‘무지의 자각’이라는 깨달음이 여전히 중요한 지적 태도일 뿐만 아니라, 어느 때보다 핵심적 인간 능력이 된 시기다. 소크라테스가 고대 그리스에서 무지의 전도사가 돼 뭇 사람들을 일깨울 때 주된 대상은 헛된 논변을 펼치는 소피스트들이었다. 지식과 논리를 갖추고 있되 가장 결정적 지혜인 자신의 무지를 깨닫지 못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거의 모든 사람이 스스로 소피스트가 돼 자신만의 좁은 지식에 빠지게 되는 환경이다. 뉴욕대의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는 “사실이 자신의 가치와 충돌할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고수할 수 있고 반대 증거를 기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고 말한다.

 

개인의 권리와 선택 영역은 어느 때보다 커졌고 갈수록 확대될 전망이다. 개인들은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인지와 판단 주체로의 역할 해야 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안락하고 매끄러운 ‘현실 거품’은 근거를 기반으로 한 현실 인식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갈 길은 멀지만 ‘무지의 자각’, 즉 ‘현실 거품’이라는 우리 인지의 맹점을 깨닫는 게 탈진실 시대의 언론인으로서, 시민으로서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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