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2021-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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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가는 길, 특별한 이유가 필요한가요?”

  • 저자 : 김지윤
  • 발행일 : 2021-07-06

21년 인생 첫 ‘경찰서’ 방문기

 

2017년 봄. 대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수업이 끝나면 곧장 서대문 경찰서로 향했다. 2주간 반복했다. 전공 수업 과제 때문이었다. 기자 출신인 교수님은 이렇게 주문하셨다. “형사에게서 직접 정보를 구해 사건·사고 기사를 써올 것.” 경악했다. 살면서 경찰서는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동기들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수업을 듣는 열댓 명 중 극히 일부가 지구대에 가본 경험만 있을 뿐이었다.

 

과제의 의도는 짐작이 됐다. 날것의 정보를 토대로 기사 중의 기본 ‘스트레이트 기사’ 쓰는 법을 익히라는 취지였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누가 등 육하원칙에 따라 발생 사건을 전달하는 단신 기사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기사 쓰기가 아니었다. 그 전에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다. 먼저, 경찰서 앞을 지키고 서 있는 의경들이 그랬다. ‘당신이 여길 왜?’라고 묻는 듯한 강렬한 시선. 첫 방문 때는 그 눈빛에 잔뜩 겁을 먹고 경찰서 입구를 그대로 지나쳤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는 나름 수월했다. ‘그래봤자 쟤네도 내 또래지’라는 자기 암시와 ‘나 여기 많이 와봤어’하는 듯한 의도된 포커페이스가 꽤 도움이 됐다.

 

다음 난제는 형사들이었다. ‘라떼’ 시절 기자들은 필요하면 문도 박차고 들어가 형사들을 만났다는데, 모두 옛말이었다. 형사과는 출입 카드를 찍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누군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가 문이 열린 찰나에 잽싸게 들어갔다. 가장 온화해 보이는 사람부터 찾았다. 구구절절 내 소개를 마쳤더니 돌아온 말은 딱 한 마디. “나가세요.” 일단 버텼다. 온갖 수사를 늘어놓으며 내 사정을 설명했다. “아 거참, 그 교수 안식년 끝나고 돌아왔나 보네. 학생, 여기 교수님 전화번호 적고 나가요.” 다행히 교수님 번호는 나도 몰라서 못 적고 나왔다.

 

형사과에서 쫓겨난 뒤 로비에서 만난 건 수습기자들이다. 학부생인 내가 신기하고도 안쓰러웠던지 뉴스 가치가 없는(?) 사건 몇 개를 던져줬다. 하루는 수습기자들을 따라 별관에 자리한 기자실을 방문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기자 일상을 그린 SBS 드라마 <피노키오>를 본 적이 있다. TV에서 기자실은 어둡고 어수선하며 다소 지저분한 듯 그려졌는데, 실제로 본 기자실도 크게 달라 보이진 않았다.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는 기자들 사이에서 누군가 내게 말했다. “기자 하지 마세요.” 이내 다른 기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너무들 하네. 본인들은 기자 하고 있으면서.’

 

한국에서 기자로 살아남기?

 

4년이 흘렀다. 현직자의 만류에도 나는 이른바 ‘언론고시생’이 됐다. 시험을 보러 다닌 지 1년이 다 돼 간다. 윤세영저널리즘스쿨에서 2년째 실무 훈련도 받고 있다. 대학 4년간의 저널리즘 공부도 마친 상태다. 이제야 그때 그 기자의 말이 조금은 이해된다. 공부하면서 언론의 실상, 위기, 한계 등을 있는 그대로 마주쳤기 때문일 테다.

 

어쩌면 4년 전보다, 지금 언론의 현실은 더 척박해졌을지 모른단 생각을 한다. 일례로 가짜뉴스는 어느새 몸집을 불리더니 우리 사회에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조작된 정보로 돈을 버는가 하면 지지자 결집 등 정치적 이득까지 보는 사람이 늘어나는 형국이다. 더 무서운 건 확증편향이다. 내가 지지하는 쪽의 주장은 설령 사실이 아닐지라도 쉽게 받아들인다. 그 배경에는 유독 정치적 양극화가 심한 한국의 특수성이 있다. 이는 언론 신뢰도에도 영향을 준다. 라스무스 클라이스 닐슨(Rasmus Kleis Nielsen)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장은 “정치적 양극화가 심한 국가들에서 대체로 뉴스 신뢰도가 낮다”라며 그 예로 한국을 지목했다. 기자가 아무리 팩트를 말해도 독자 의견과 다르면 ‘기레기’란 악플부터 달리는 까닭일 테다.

 

이 같은 현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때면 가끔 회의감도 몰려온다. 예컨대 이런 생각들이다. 과연 내가 이 지독한 현실에 맞서 진실을 말할 수 있을까. 그런다고 뭐가 바뀌기는 하는 걸까. 아직 언시생에 불과한 나도 걱정하는 부분이다. 하물며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끼는 현직 기자의 고충은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길을 계속 가는 이유, 답은 하나다


확인되진 않았지만, 저연차 기자들이 퇴사했다는 얘기가 자주 들린다. 작년 A사 신입 중 몇 명이 벌써 퇴사했다더라, 로스쿨로 빠졌다더라, 스타트업으로 갔다더라 등. 솔직히 언시생 입장에선 힘이 빠지는 소리다. 나는 들어가려고 아등바등하는데 안에선 자꾸만 나오려고들 한다. 물론 그렇다고 신규 채용 인원이 늘어나는 건 아니다. 저널리즘스쿨 동기는 가끔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에잇 그 자리 나 주지. 절대 안 나갈 텐데.” 그럼 난 이렇게 되받아친다. “저 사람들이라고 언시생일 때 덜 간절했을까.”

 

내부 사정이 어떻고 그런 건 우린 잘 모른다. 무너진 워라밸, 열정 페이, 달라진 사회 인식 등 겉으로 드러난 일부를 보고 퇴사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해볼 뿐이다. 요즘은 언시판도 더 어려워졌다. 바늘구멍 같은 채용문은 여전한데, 입사의 꿈은 최근 더 멀고 험해진 것처럼 보인다. 언론사들이 너도나도 짧게는 2주에서 길게는 8주간의 인턴 전형을 공채에 추가하면서다. 준비 과정도 힘들고, 합격하면 더 힘든 이 길을 나는 왜 계속 가려고 할까. 같은 질문을 윤세영저널리즘스쿨 14기 동기들에게 던졌다. 그들의 답변을 공유한다.

 

“신문 기사 문장들을 보면 건조하고 딱딱하잖아요. 미사여구 없이 팩트로만 뭉쳐져 있으니까요. 그런 무게감이 좋아요. 건조한 문장들로도 누군가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기사를 쓰고 싶어요.” (준비 1년 차 A 씨)

 

“사람마다 표현의 욕구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고요. 그런데 이왕이면 그 일을 기사로 하고 싶어요. 글이 주는 진지함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 싶어요.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 일해서 얻는 보람도 클 것 같고요.” (준비 2년 차 B 씨)

 

“여전히 우리 사회 의제는 기자가 만들어나간다고 생각해요. 한국기자상 수상작들을 보면 실제로 우리 사회 변화를 만든 기사들이 많잖아요. 시험 준비하며 지칠 때도 저는 수상작들을 보면서 동력을 얻곤 해요. 다시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이 들어요. 그런 기사를 꼭 쓰고 싶어져요.” (준비 2년 차 C 씨)

 

언론의 미래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셋은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답을 내놨다.

 

“기자는 이 사회에 없어지면 안 될, 없어지지도 않을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널리스트만이 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은 시대가 바뀌어도 절대 변하지 않을 테니까요.”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가 여전히 기자를 꿈꾸는 이유는 뭔가. 결국, 답은 하나다. 단지 이 일이 좋다.

 

다시, 2017년 봄을 떠올린다. 서대문 경찰서를 드나들던 2주 동안, 나는 매일같이 스스로에게 도전하는 기분이었다. 수차례 거절 끝에 마침내 경제팀 팀장과의 면담 기회를 따냈을 땐 왠지 모를 희열까지 찾아왔다. 이렇게 부딪쳐서 극복해낼 일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겠단 확신도 들었다.

 

저널리즘스쿨에서 다시 뵙고 있는 교수님은 얼마 전 이런 말씀을 하셨다.

 

“기자는 진짜 이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 직업이야.”

 

학부 수업 실습 과제를 통해 전하고자 하셨던 메시지도 같지 않을까. 아니다 싶으면 일찍이 그만두라는 아주 친절한 가르침이었을지 모른다.

끝으로 소회를 밝히며 글을 마친다. 훗날 내가 기자가 된다면, 오랜 시간 정체돼있는 한국 저널리즘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 큰 보탬이 되고 싶다. 그 일이 어렵지 않으리란 확신은 이 글을 쓰며 얻었다. 내 곁에,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이 길을 가고 있는 동료들이 있음을 확인한 덕이다. 우리의 그 마음이 부디 오래 버텨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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