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2022-04-06
사실과 진실 사이 - 팩트체커는 사실의 재판관에 그치는가

사실과 진실 사이 - 팩트체커는 사실의 재판관에 그치는가

  • 저자 : 이경원
  • 발행일 : 2022-04-06


 

팩트체크의 중요성이 요구되는 시대다. 그러나 정보의 합리성이나 타당성을 검증하는 일을 ‘팩크체크’라 명명하는 일이 늘고 있다. 단어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는 올바른 팩트체크를 위해 언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편집자 주

 

최근 언론 지형에서 ‘팩트체크’라는 말처럼 방만하게 쓰이는 표현도 없습니다. 누구나 팩트체크를 말하지만, ‘팩트’를 ‘체크’하지 않는 팩트체크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선거판이 치열해질수록 그렇습니다. 정당들은 후보자 토론회 중간중간, 상대의 발언을 실시간 팩트체크한다며 자료를 뿌렸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문재인 정부는 진영 내 인사를 해서 한계가 있다”는 발언에 대해, 국민의힘은 “진영 내부에서 내 편만 쓰는 (이재명 후보의) 인사 행태는 어떻게 설명하겠느냐”며 팩트체크 알림 문자를 보냅니다. “(한반도) 유사시 (일본군이) 들어올 수 있는 것이지만”이라는 윤석열 후보의 발언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윤 후보가 한일관계 악화는 일본의 우경화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해 온 배경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검증 결과를 알립니다.

 

딱 봐도 팩트체크가 아닙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팩트체크의 정의는 정보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겁니다. 있는 그대로, 오로지 팩트에 근거해 판정을 내리는 과정을 아우릅니다. 자연히 팩트체크에서 위와 같은 정치적 해석은 배격돼야 합니다.

 

팩트체크가 오염되고 있습니다. 자연히 우리는 “팩트체크는 곧 사실 검증”이라는 팩트체크 저널리즘의 초심(初心)을 연상하게 됩니다. 《신문과방송》 2월호에 그런 초심이 잘 담겼습니다.

 

“700~800억 원의 재원만 마련하면 탈모약 보험 적용을 할 수 있다는 발언을 검증한 SBS의 11월 11일 자 <사실은> 기사 등 팩트체크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사실관계가 아닌 주장의 합리성이나 타당성을 들여다본 기사들이 여럿이다. ‘A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나 ‘A의 예측은 합리적이지 않다’와 ‘A는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전혀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기사들은 서로 명확하게 구분돼야만 한다.”1)

 

팩트체크 기사는 참과 거짓을 명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소재를 담아내야 하며, 타당성이나 합리성을 검증하는 것은 팩트체크 기사 영역에 부합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지가 읽힙니다.

 

다만, 현장에서 복무하는 팩트체커 입장에서 이런 원칙이 종종 예상하지 못한 역설에 직면할 때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사실성과 진실성

 

팩트체크 기사의 핵심 요건으로 참과 거짓의 ‘판정’이 꼽힌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여기에는 사실과 거짓을 분명히 판정할 수 있는 정보가 팩트체크 기사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전제가 깔렸습니다.

 

실제 미국의 팩트체크닷오르그(FactCheck.org)와 폴리티팩트(PolitiFact), 워싱턴포스트의 팩트체커(FactChecker)는 사실과 거짓을 분명히 판정하며, 이를 시각화하고 있습니다. 폴리티팩트는 ‘새빨간 거짓말’부터 ‘진실’까지 6단계로 구분된 진실검증기(Truth-O-Meter)를 운영하며, 워싱턴포스트의 팩트체커는 검증 대상의 사실성이 낮을수록 더 많은 피노키오 마크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폴리티팩트의 ‘진실 검증기’ <출처 – https://www.politifact.com/>;

 

 

우리나라 팩트체크 역시 미국의 팩트체크 기법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SNU팩트체크센터를 비롯한 국내의 여러 팩트체크 기관들도 명확한 판정을 내리기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팩트체크 기관이 그렇지는 않습니다. 영국의 풀팩트(Full fact)는 “등급 매기기는 매력적이지만,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며, 어떤 주장이 사실과 거짓 중의 하나가 아닌 것은 종종 있는 일이기 때문에, 등급 매기기가 사안의 전체적인 그림을 제공하지 않을 수 있다”며 등급을 매기는 걸 거부하고 있습니다(박아란·이나연·정은령, 2018).

 

실제 풀팩트 기사를 보면, 꼭 사실과 거짓을 판정할 수 있는 정보만 팩트체크 소재로 삼는 것 같지 않습니다. 사실을 검증하는 기사뿐만 아니라, 주장의 타당성과 합리성을 가려내는 내용을 여럿 볼 수 있습니다.

 

SBS 팩트체크 <사실은>팀은 팩트체크의 판정이 ‘사실성’을 너머 ‘진실성’을 가리는 적극적 행위라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의 뜻을 정확히 받아쓰기 했는가 확인하는 게 아니라, 화자의 말 그 자체의 진실성을 가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Graves, L., & Glaisyer, T., 2012). 

 

결국, 팩트체크 저널리즘은 허위 정보에 대한 ‘교정’을 넘어, 과장되고 왜곡된 정보에 대한 ‘객관적 진단’을 통해 공동체의 ‘공익’에 기여한다는 정신을 품고 있어야 합니다. 팩트체크 저널리즘이 교정에 그치고, 공익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 본연의 목적이 퇴색될 수밖에 없다는 게 팩트체커로서의 소신이기도 합니다.

 

선거 팩트체크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후보들의 정책과 발언을 팩트체크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적 행동일 수 있기 때문에 훨씬 신중하고 예민하게 다뤄야 합니다. 이번 대선처럼 치열하게 경쟁하는 구도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에 <사실은>팀은 적어도 이번 대선 팩트체크 만큼은 ‘A는 거짓을 말하고 있다’ 혹은 ‘A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식으로 결론이 도출되는 것만이 팩트체크의 소재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신문과방송》 2월호에서 말하고 있는 이재명 후보의 탈모 공약 검증은 이런 목표에서 수행됐습니다.

 

말꼬리 팩트체크에 대한 비판

 

판단이 명징한 팩트체크 기사가 소모적인 논란을 만들어 오히려 공익을 위해하는 경우도 더러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른바 ‘말꼬리 팩트체크’에 대한 비판이 대표적입니다.

 

가령, 지난 3월 2일 마지막 법정 토론회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이재명 후보가 지난해 자영업자 손실 보상을 말한 적 없다”고 주장합니다. SBS <사실은> 코너도 <SBS 8 뉴스>에서 이 부분을 팩트체크 했습니다. 이 후보의 과거 발언을 찾아내 “지난해 이재명 후보의 SNS를 보니 손실 보상을 말한 적 있었다”는 검증 결과가 나왔습니다. 윤 후보의 주장은 ‘거짓’이라고 <사실은>팀은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선거 팩트체크인가에 대한 고민이 앞섭니다. 이미 두 후보 모두 최근 자영업자 손실 보상을 말했고, 더불어민주당까지 나서 자영업자 손실 보상을 위한 추경까지 편성한 상황에서, 과연 이런 팩트체크가 공익적인 것인지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지지자들 간에 의미 없는 논쟁만 만드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도 듭니다. 기사에 달린 댓글이 전부일 수는 없지만, ‘거짓말을 한 거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등의 소모적인 싸움이 이어집니다.

 

그간의 맥락을 부연하자면, 지난해 이재명 후보는 ‘기본 소득’ 의제에 집중해, 상대적으로 자영업자 손실 보상과 관련해서는 형식적인 발언에 그쳤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학계에 몸담고 있는 분에게 직접 받은 의견입니다. 이재명 후보가 자영업자 손실 발언의 필요성을 말한 건 사실이지만, 그 적극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판단이 갈린다는 의미일 겁니다. 팩트체크 기사의 결론은 ‘거짓’이지만, 그 안에도 다양한 층위가 존재합니다.

 

참 안에도 거짓이, 거짓 안에도 참이 얽히고설킨,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닮았습니다.

 

해석과 맥락, 합리성을 강조하는 팩트체크

 

이런 맥락들은 결코 ‘거짓’이라는 팩트체커의 판결 앞에 다 담아낼 수 없습니다. ‘맥락’은 ‘판정’ 앞에 누락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복잡한 사안을 단순화해 심지어 유권자의 고민과 선택을 방해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런 접근을 공익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학계 일부에서도 지난 대선 때부터 팩트체크 저널리즘의 수용 범위를 ‘발언의 참과 거짓’을 넘어 합리성과 타당성에 기반을 둔 ‘정책 검증’으로 확대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JTBC ‘팩트체크’와 SBS ‘사실은’은) 아직까지는 후보자들의 선정적 발언을 검증하는 데 중심을 둔 것으로 보인다. (…) 이제 각 후보의 정책 공약을 구체적으로 검증하는 취재보도를 기대한다. 이제 ‘팩트체크’는 정치인의 발언과 정당 공약, 주요 공적 사안에 대한 후보자의 견해와 의견을 포괄하여 사실 여부, 현실 가능성, 합리성을 판단하는 새로운 취재 언어이자 취재기법으로 부상했다.”2)

 

SBS <사실은>팀은 이 지적에 공감했고, 말꼬리 팩트체크에서 자유로울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결론은 검증 과정에서 그 맥락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보다 많은 정보를 시청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팩트체크의 ‘심층성’이었습니다. 

 

물론, 해석과 맥락, 합리성을 강조하는 팩트체크는 참과 거짓의 분명함을 기회비용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해석과 맥락은 주관적인 영역일 수 있습니다. 자연히 사실을 중시하는 팩트체크 저널리즘의 순수성을 훼손시킬 리스크가 존재합니다.

 

반대로, 참과 거짓의 ‘명징한 판결’은 해석과 맥락을 위축시킬 수도 있습니다. 유권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사실 그 이상의 진실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양날의 칼입니다.

 

SBS <사실은>팀은 어느 때보다 예민한 대선 정국, 적어도 대선 팩트체크 만큼은, 참과 거짓의 명징한 판결이 되레 논란과 반작용만 낳을 수 있는 위험성이 생각보다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기사의 한 문장한 문장이 무척 예민하게 소비되는 선거 정국입니다. 팩트체크 저널리즘 자체가 오염됐다고 판단하는 수용자들도 생기며, 이 역시 팩트체크의 가능성을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이미 팩트체크라는 레테르를 달고 왜곡된 정보가 쏟아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현장에서 복무하는 팩트체커는 팩트체크 콘텐츠의 피드백을 가장 예민하고 기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콘텐츠가 얼마나 ‘건강하게’ 소비될 수 있는가도 중요한 기준이 돼야 합니다. SBS <사실은>팀의 기사 역시 무엇이 더 공익적인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임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영 양극화라는 시대적 상황, 나아가 이런 양극화를 증폭시키는 선거 정국, ‘사실’을 넘어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는 팩트체크가 무엇인지, 여전히 남겨진 숙제가 많습니다.

 

 

 

 

 

 

 

 

1) 최순욱, <고민 없는 팩트체크 기사 양산 이용자의 오해만 가중시켜>, 《신문과방송》 2022년 2월호.

2) 백미숙, <JTBC ‘팩트체크’와 SBS ‘사실은’이 더 필요하다>, 미디어오늘, 20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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