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30일부터 더우인(틱톡의 중국 내 버전, 抖音)과 빌리빌리(bilibili) 등 중국 내 대표적인 동영상 플랫폼에서 <대영박물관 탈출하기(逃出大英博物馆)>라는 제목의 숏폼 웹드라마가 큰 성공을 거뒀다. 전체 방송 시간이 20분도 되지 않는 총 3회 분량(회별 2~10분)의 이 웹드라마는 마지막 회차 업로드가 완료된 후 일주일 동안 더우인에서만 3억 뷰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중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는 등장인물도 2명밖에 되지 않고 줄거리라고 할 만한 복잡한 내용도 없다. 영국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중국 전통 옥주전자가 사람으로 변신해 박물관에서 탈출한 뒤 우연히 영국에 주재 중인 중국인 기자를 만나게 되고 꿈에 그리던 중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옥주전자 여인’이 기자와 함께 베이징과 청두 등을 여행하는 것이 드라마의 핵심 내용이다. 더우인에서 방송된 첫 회 분량은 2분밖에 되지 않는다. 영국 런던과 중국 청두, 베이징의 관광명소가 주요 장면으로 등장하고 등장인물 간의 대화도 간단하다.
이 웹드라마가 큰 성공을 거둔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첫째는 대영박물관으로 대변되는 서구 열강에 강제로 빼앗긴 중국 문화재 반환을 주장하는 ‘애국주의’ 소재를 활용한 것이다. 둘째는 중국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숏폼 웹드라마 소비 증가 추세가 해당 드라마 열풍에 불을 붙인 것이다. 실제로 2023년 하반기에 중국 온라인 콘텐츠 시장에 ‘숏폼 웹드라마’가 새로운 키워드로 떠올랐다. <대영박물관 탈출하기> 외에도 비슷한 시기 또 다른 숏폼 비디오 플랫폼 콰이쇼우(Kuaishou)에서 제작·방송한 캠퍼스 청춘 드라마 <아회도십칠세적이유, Back to Seventeen(我回到十七岁的理由)>는 25회 총 2시간 분량으로 제작됐는데, 방영 후 한 달 안에 전체 누적 조회수 5억 회 이상을 기록했다.
숏폼 콘텐츠, 플랫폼을 만나 성장하다
숏폼 콘텐츠 열풍은 더우인에서 비롯됐다. 초기에는 저품질 콘텐츠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강력한 전파력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확장해 나갔고 이후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의 동영상 플랫폼들에도 숏폼 형식인 쇼츠, 릴스 등이 도입됐다. 위의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 중국에서는 숏폼 콘텐츠가 드라마 시장에서도 크게 확산 중이다. 국가광파전시총국(광전총국, 国家新出版广电总局, National Radio and Television Administration)은 숏폼 웹드라마를 “에피소드 1개당 영상 길이가 수십 초에서 15분가량이며, 비교적 명확한 주제와 개요, 연속성 있고 완전한 스토리로 구성된 인터넷 영상 드라마”로 정의하고 있다.
중국에서 숏폼 웹드라마의 형태는 약 10년 전부터 존재했으나 더우인이나 콰이쇼우처럼 숏폼 콘텐츠에 특화된 플랫폼이 존재하지 않았고, 초기에는 자본력과 인력 부족으로 콘텐츠 완성도가 높지 않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2020년부터 다양한 OTT 플랫폼과 제작사들이 숏폼 웹드라마를 잇달아 선보이기 시작했는데 이는 숏폼 웹드라마를 콘텐츠 시장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보는 시각 때문이다.
콰이쇼우는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숏폼 드라마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2019년에는 홈 화면에서 숏폼 드라마 카테고리를 선보이는 등 이 분야에 기반을 구축했다. 2020년 말에는 숏폼 드라마 제작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며, 2021년에는 이러한 지원 프로젝트를 통해 숏폼 드라마 브랜드를 구축하는 데 착수했다. 2022년 콰이쇼우에서 공개된 숏폼 드라마 중 누적 조회수 1억 회를 넘긴 작품은 100편이 넘는다. 이 중 대부분이 웹툰, 웹소설과 같은 원작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며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다루고 있다.
숏폼 플랫폼에서 제작되는 숏폼 웹드라마는 일반적으로 에피소드당 3분 내외로 제작되며 전문 배우 외에도 왕홍으로 대변되는 인플루언서 등을 기용하기도 한다. 텐센트(騰訊), 아이치이(愛奇藝), 유쿠(優酷), 망고TV(芒果TV) 등 전통적인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들도 숏폼 웹드라마에 막대한 투자를 감행하고 있다. 각 에피소드는 10분 내외로 제작되는데 전문 배우들이 참여하고 드라마 본연의 서사에 집중하면서 상대적으로 높은 퀄리티의 콘텐츠를 제공한다.
중국의 국민 메신저앱인 위챗의 미니 프로그램은 숏폼 웹드라마가 소비되는 중요한 채널 역할을 하고 있다. 초기에는 일부 기업이 사용자의 클릭률과 구매 전환율을 높이기 위해 숏폼 웹드라마 형식으로 광고를 제작해 미니 프로그램에 노출한 것이 시초였다. 이후 플랫폼 및 콘텐츠 제작사들은 짧은 드라마 형식의 영상이 콘텐츠이자 광고로 기능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숏폼 웹드라마를 대량 출시했다. 위챗에서는 숏폼 드라마를 미니 프로그램으로 게시하고, 숏폼 드라마를 볼 수 있는 미니 프로그램의 링크 주소를 포함한 광고를 게시하는 방식이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미니 프로그램 숏폼 웹드라마(小程序短劇)로 불리는 해당 유형의 콘텐츠는 짧지만, 강렬한 반전과 자극적인 내용으로 인기를 끌며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작비 대비 엄청난 흥행을 거두는 콘텐츠들이 속속 나오며 숏폼 웹드라마는 중국 콘텐츠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2023년 중국 숏폼 웹드라마 시장은 전년 대비 267.65% 증가한 373억 9,000만 위안(약 6조 8,000억 원)을 기록하며 2027년까지 1,000억 위안(약 18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는 중국 숏폼 웹드라마
최근에는 중국 업체가 제작한 숏폼 웹드라마 콘텐츠의 인기가 해외시장, 특히 북미 지역에서 급증하고 있다. 2000년 설립돼 중국 증시에 상장된 디지털 콘텐츠 기업 COL그룹(中文在線)의 자회사 크레이지 메이플 스튜디오가 운영하는 숏폼 드라마 앱 릴숏(ReelShort)의 놀라운 상승세가 대표적인 사례다.
릴숏은 보통 12분 내외 길이의 에피소드 80~100개로 구성된 숏폼 웹드라마를 제공하는데, 극적인 내용을 기반으로 다양한 줄거리 전환과 강력한 클라이맥스를 통해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중국 내에서 제작된 콘텐츠에 서투르게 영어 자막을 추가했던 초기와는 달리 직접 서양 배우들을 캐스팅해 영어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스토리라인은 중국 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숏폼 웹드라마들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릴숏은 에피소드당 결제 방식을 운영하며, 일부 에피소드는 무료로 감상할 수 있지만 이후 회차는 유료로 구매해야 한다. 시청자들은 광고를 시청해 가상 화폐를 얻거나 직접 가상 화폐를 구매해서 사용할 수 있다. 전체 시리즈를 시청하는 데 드는 비용이 10달러(약 1만 3,000원)를 웃돈다. 2022년 8월 출시 이후 2023년 11월까지 앱스토어에서 1,100만 회 이상 다운로드 됐으며(11월 한 달 동안만 190만 회 다운로드를 기록), 2,200만 달러(약 259억 원)의 인앱 결제 수익을 창출했다. 릴숏은 11월에 미국 iOS 엔터테인먼트 카테고리 앱 다운로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세로 동영상과 짧은 에피소드를 특징으로 하는 스마트폰 친화적인 숏폼 웹드라마 콘텐츠에 대한 아이디어는 2020년 출시된 퀴비(Quibi)에 의해 크게 주목받았다. 디즈니 전 이사회 의장이자 드림웍스의 공동 창업자였던 제프리 캐천버그(Jeffrey Katzenberg)가 설립하고 월트디즈니컴퍼니, 골드만 삭스, BBC 스튜디오를 포함한 다양한 투자자들의 지원을 받은 퀴비는 출시 이후 불과 6개월 만에 서비스 중단을 결정했다.
퀴비가 수백만 달러를 들여 할리우드 스타가 출연하는 에미상 후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식을 채택했다면, 릴숏은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 기본적인 특수 효과, 그리고 소외된 주인공이 부자가 되거나 억만장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은 상대적으로 진부한 스토리로 구성된 각본에 초점을 맞췄다. 짧은 상영 시간, 많은 에피소드, 낮은 제작 비용과 단기 촬영 기간을 특징으로 하는 중국에서 성공적으로 입증된 모델을 해외 시장에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특징들은 짧은 비즈니스 검증 기간과 높은 수익 효율성을 가능하게 한다.
COP 그룹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세 개의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차별화 전략을 통해 다양한 유형의 콘텐츠 개발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해당 프로젝트를 위해 할리우드 파업으로 다른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던 LA 영화 학교들의 최근 졸업생들이 주로 채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릴숏 이외에도 드라마박스(DramaBox), 99TV, 굿숏(GoodShort)과 같은 다른 중국 앱들은 유사한 모델로 해외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러한 숏폼 웹드라마의 전 세계적인 인기는 모바일 인터넷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하고 발굴해내는 중국 기업들의 역량을 잘 보여준다.
숏폼 웹드라마 인기, 중국 내 규제 강화 불러오다
중국의 지난 인터넷 및 모바일 플랫폼 시장의 성장 시기와 마찬가지로, 숏폼 웹드라마 시장의 급속한 확장은 당국의 엄격한 규제로 이어졌다. 숏폼 웹드라마 기업들이 해외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은 새로운 성장의 길을 열어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국내 서비스가 점점 더 많은 당국의 규제를 받는 상황에서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광전총국 주도로 2022년 11월부터 3개월간 진행된 단속 기간 동안 폭력, 음란 또는 저속한 내용으로 인해 2만 5,300개 이상의 숏폼 웹드라마 콘텐츠가 검열되어 동영상 플랫폼에서 삭제됐다. 곧이어 광전총국은 각 웹드라마 시리즈의 캐스팅, 제작, 마케팅 및 사회적 가치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를 통해 성장하고 있는 숏폼 웹드라마 시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제안된 조치는 숏폼 웹드라마에 대한 콘텐츠 심사 시스템을 구축하고 해당 콘텐츠를 방송하는 플랫폼에 대한 감독을 확대하는 것을 포함한다.
동영상 플랫폼들은 규제 당국으로부터 부적절한 콘텐츠 검열에 대한 압박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실제로 더우인은 작년 11월 자발적으로 숏폼 웹드라마의 홍보 주체에 대한 심사를 강화했다. 더우인의 새로운 규정에 따르면 숏폼 웹드라마를 홍보하고자 하는 광고주는 적절한 라이선스 문서를 제시해야 하는데, 필요한 문서에는 ‘라디오 및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 및 운영 라이선스’, ‘부가가치 통신사업 운영 라이선스’, 그리고 ‘정보 네트워크 통신 시청각 라이선스’ 또는 ‘인터넷 문화 사업 라이선스’가 포함된다. 모든 라이선스 보유자는 규제 당국에 의해 사전 심사를 받은 사업자들로, 이는 플랫폼에서 개인 및 라이선스가 없는 스튜디오가 콘텐츠를 홍보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것이다.
숏폼 웹드라마의 질적 경쟁이 시작되다
숏폼 웹드라마가 단기간에 많은 회차를 만들어 내는 만큼 콘텐츠로서의 질적 수준에 대해 회의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숏폼 웹드라마 자체가 반전 극대화를 통해 시청자 이목 끌기에 집중하면서 자극적인 요소에 치중하고, 스토리를 매우 단순하게 구성하는 등 질적 측면에서 대외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을 요소를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숏폼 웹드라마의 질적 경쟁이 시작되는 분위기다. 더우인은 OTT 플랫폼 망고TV와 ‘숏폼 웹드라마의 질적 발전’을 중점으로 하는 공동 제작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OTT 플랫폼과 숏폼 플랫폼이 저작권 문제를 두고 대립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해당 프로젝트는 예상외의 조합인 셈이지만 OTT 플랫폼들이 오리지널 콘텐츠를 숏폼 플랫폼을 통해 마케팅할 기회를 포착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 다양한 콘텐츠로 각색돼 큰 성과를 내는 웹소설이 숏폼 웹드라마에 활용되면서 콘텐츠 완성도가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텐센트의 자회사이자 중국 최대 웹소설 플랫폼인 웨원그룹(China Literature)은 작년 10월 일반인 대상 숏폼 웹드라마 대본 공모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숏폼 웹드라마 시장이 커지고 고품질 콘텐츠 경쟁이 시작되면 투자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새로운 장르의 콘텐츠 등장과 질적 발전에 기대감이 있지만 산업적 측면에서는 위태롭다는 평가와 함께 새롭고 더 효율적인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한편 <대영박물관 탈출하기>의 대성공 이후, 중국 정부 차원에서 숏폼 플랫폼을 활용한 애국주의적 문화 콘텐츠 제작에 관한 관심과 지원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전까지는 대부분의 웹드라마가 연애, 고전극, 가벼운 판타지와 같은 주제에 초점을 맞췄다. 제작비 지원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제작자들은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인기 있는 소재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화재 반환과 애국주의를 주제로 한 <대영박물관 탈출>의 예상치 못한 성공으로 인해 애국주의적 주제를 다룬 웹드라마 제작에 새로운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COL그룹 및 중국의 숏폼 웹드라마 업체들이 해외에서 성장을 지속하거나 이익을 창출할지는 불투명하다. 릴숏은 미국의 iOS 엔터테인먼트 차트 정상에 오른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상위권 순위에서 하락했다. 콘텐츠에 대한 만족도는 상대적으로 높지만, 사용자 상당수가 광고 및 유료 구매 모델에 대해 불만을 표하고 있다. 일부는 월정액 지불을 선호하거나 광고가 더 제한돼야 한다고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숏폼 웹드라마 시장 경쟁이 빠르게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콘텐츠 유형에 적합한 더 효율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젊은 시청자들 중심의 시장을 향후 다른 연령대로 어떻게 확장할 것인지, 또 숏폼 웹드라마의 시청 습관을 어떻게 정착시킬지에 대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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