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 이어 또다시 발생한 이번 기자 단톡방 성희롱 사건에 대한 조사, 징계 현황과 이를 통해 향후 언론계가 새겨야 할 교훈을 확인해 본다. 편집자 주
지난 6월 말. ‘국회 남기자 단톡방서 여기자 성희롱’으로 시작하는 ‘받은 글’이 돌았다. 믿고 싶지 않았다. 고백하건대,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의사와 상관없이 추가적인 정보가 날아들었다. 가해 남기자들의 소속사와 이름은 물론이고 문제의 단톡방이 폭로된 배경에 관한 추정까지. 아마 필자에게 미치지 않은 더 많은 ‘받은 글’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미디어오늘이 필자의 안이함을 질책이라도 하듯, ‘확인 사살’을 하는 보도를 냈다. 기사에 언급된 단톡방 대화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과거 비해 빠른 대처, 중징계 ‘눈길’
알고 보니 미디어오늘이 일주일쯤 전부터 관련 제보를 받아 취재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이야기가 일부 새어나가 ‘받은 글’이 돈 것 같았다. 미디어오늘은 피해자 보호를 위해 모든 피해자에게 동의를 구하고 법률 자문을 받은 것은 물론, 사례 언급과 표현 등에도 특별히 신중을 기했다고 한다. 그 덕분일까. 통상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에게 쏠리던 관심이 분산되며 가해자에 대한 징계 처분 등에 일찌감치 여론이 모일 수 있었다.
해당 언론사들은 이례적일 정도로 빠르게 대처했다. 가해 기자들을 즉각 업무에서 배제하고 진상조사와 징계 등의 절차에 착수했다. 서울신문은 보도 다음 날이 휴무였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기자를 불러내 징계위원회를 열고 바로 해임을 결정했다. 사건이 알려진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뉴스핌과 이데일리도 해당 기자가 낸 사표를 반려한 채 징계위원회를 열어 각각 해임과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한국기자협회 또한 지난 7월 9일 이사회를 열어 회원인 해당 기자 3인에 대해 영구 제명을 의결했다. 회원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물론, 추후 재가입도 할 수 없게 한 최고 수위의 징계다.
이게 얼마나 이례적인 중징계인지는 과거 비슷한 사례에 비춰보면 알 수 있다. 2017년에도 남성 기자 4명이 단톡방에서 동료 여성 기자들의 외모를 품평하는 등 성희롱한 사실이 드러났는데, 당시 가해 기자들이 소속 회사에서 받은 징계는 감봉(1~3개월)과 근신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쉬쉬하는 분위기 속에 알려졌다. 반면 최근 사건에선 해당 언론사들이 먼저 나서서 사과와 유감의 뜻을 표명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기자협회 역시 2017년엔 1년 6개월에서 최대 2년의 자격정지 처분을 내린 데 반해 이번엔 영구 제명이란 칼을 빼 들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징계 수위를 결정한 기자협회 징계위원회는 “동료와 취재원을 성희롱 대상으로 삼은 것은 엄격한 도덕성과 취재 윤리가 요구되는 언론계에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며 사안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언론계 성평등 정도, 남녀 기자 인식 차 커
유례없는 중징계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사건이 처음 알려진 뒤 여성 기자들과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시민연합 같은 단체들이 일관되게 요구한 것도 ‘일벌백계’였다. 강력한 징계와 처벌 등 성폭력에 대한 ‘무관용’ 원칙은 그 자체로 좋은 예방책이자 재발방지책이 될 수 있다. 언론인에게 요구되는 윤리 기준을 다시금 되새기고, 추후 유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참고할 만한 준거가 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최소 10명 안팎의 피해자를 남긴, 이번 사건이 남긴 교훈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같은 사건에서 얻은 교훈이 ‘하지 말아야 한다’가 아니라 ‘들키지 말아야 한다’라면 어떨까.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한 언론인은 필자에게 이런 말을 전해줬다.
“주변에서 기사를 보고 제일 많이 한 말이 ‘어떻게 밝혀졌대?’ 이거였어요. 자신들은 젠더 감수성이 있다고, ‘나는 아니니까’ 생각하지만, 이 사안 자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는 거예요. ‘안 걸리면 된다’는 생각이 저변에 있다고 봐요.”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언론계 내부의 온도 차를 보여주는 말이다. 이는 이번 단톡방 성희롱 같은 사건의 본질을 ‘개인의 일탈’로 보느냐 조직 문화 등 ‘구조적 문제’로 보느냐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인식 차는 대체로 성별 차이를 드러낸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3 한국의 언론인>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자 2,011명을 대상으로 우리 언론 전반의 성평등 정도를 물은 결과 5점 만점에 평균 2.93점으로 보통(3점) 수준을 나타냈다. 그러나 남녀 기자의 인식 차이는 컸다. 남성 기자(1,376명) 응답 평균은 3.16점으로 보통 수준을 웃돈 데 반해 여성 기자(635명) 평균은 2.44점으로 한참 못 미쳤다. △성 불평등 인사 △성차별적 조직 문화 △상사·동료로부터의 성폭력 등 성평등한 언론 환경을 저해하는 문제점의 심각성 정도 역시 남녀 기자들은 다르게 받아들였다. 같은 사안을 여성 기자들은 비교적 심각하게 생각했지만, 남성 기자들은 별로 그렇지 않다고 여긴 것이다.
비슷한 조사 결과가 또 있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지난해 7~9월 조합원 1만 5,701명(2023년 기준)을 대상으로 성평등 조직 문화 실태조사(분석 대상 응답자 2,097명)를 했는데, 여기서도 성차별 등에 대해 남녀 간 인식 차이가 드러났다. 업무상 성차별에 관해 여성 응답자는 10명 중 3명꼴로 동의했지만, 남성 응답자는 10명 중 1명꼴로만 동의를 나타냈다. “일터에서 여성에 대한 비하·외모 평가·성적 대상화 발언이 오고 간다”는 문항에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도 여성(29.9%)과 남성(7.7%) 간 차이가 컸다.
개인 일탈 치부 말고 언론계 전체 자성해야
같은 문제도 원인 분석이 다르면 해법도 달라진다. 그에 대한 평가 역시 마찬가지다. 단톡방 성희롱 사건 얼마 뒤 진행된 한국기자협회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성폭력 대응 및 예방제도 마련 수준에 대해 여성 기자들은 부정 평가(43.9%)가 긍정 평가(22.7%)보다 많았지만, 남성 기자들에게선 반대로 긍정 평가(41.6%)가 부정 평가(21.2%)를 앞섰다.1)
단톡방 성희롱 등 언론계 성폭력 사건이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굳이 통계를 내보지 않더라도 언론계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그런 여성 언론인의 상당수가 언론사 조직 문화가 성차별적이라고, 성폭력 사건에 대한 대처와 예방책도 미흡하다고 지적하는데, 여전히 언론계 다수인 남성 언론인들은 그런 생각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이를 그저 ‘젠더 갈등’쯤으로 치부할 게 아니다. 인식 차이를 인정하되 그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성폭력 예방이나 성평등 언론을 위한 어떤 대책도 사실상 의미가 없어진다. 기자협회 윤리위원회가 “언론계의 전체적인 자성”을 주문하며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이 같은 폭력은 언제든 자행될 수 있다”고 지적한 이유도 여기 있다.2)
조직 문화 바꿔야 언론 보도도 달라진다
이는 단지 언론계 성평등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성폭력과 성차별을 대하는 언론 내부의 시각이 달라진다는 건 언론 전반의 인권 및 젠더 감수성이 올라간다는 걸 의미한다. 성범죄 등 젠더 이슈와 관련한 우리 언론 보도의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는 첫 단추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지난 5월 영국 BBC가 공개한, 이른바 <버닝썬 다큐>가 3주 만에 1,000만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당시 국내 언론은 “5년 전 일을 다룬 다큐가 이토록 열렬히 환영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한국 언론은 왜 BBC처럼 하지 못했을까”에 주목했다.3) 한국일보는 지난 6월 기사에서 2019년 버닝썬 사건 당시 한국 언론은 “가해자들의 가해 행위에 초점을 맞춘” 반면, BBC는 “성범죄 피해자의 목소리와 취재 과정에서 괴롭힘 피해자가 된 기자들의 목소리에 집중”했고, 그렇게 “관점이 달라지자” 그동안 몰랐던 사실들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기사는 이 같은 차이를 만들어낸 원인으로 “가해자 구속 등으로 사건이 잦아든 뒤엔 거의 다루지 않는 한국 언론의 관행”과 “언론계 조직 문화의 영향”을 꼽았다. 성평등한 조직 문화가 중요한 건 바로 그래서다.
성폭력 피해를 줄이는 데서 나아가 더 나은 보도를 가능하게 해준다. 이는 언론 전반에 대한 신뢰도와도 연결될 것이다. 지금의 조직 문화를 그대로 둔다면 언론 불신은 물론이고 동료 기자들 간의 불신과 갈등도 커질지 모른다. 언론계 전체가 이제야말로 진정한 변화를 꾀해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원고를 마감하고 며칠 뒤, 이번엔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국정원 직원이 여성 기자들의 사진을 문자 메시지로 공유하며 성희롱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디어오늘은 이들의 대화에서 여성 기자들이 “성적 만족감을 주는 수단이나 도구처럼 소환됐다”고 설명했다. 정치부 남기자 단톡방에 이은 ‘성희롱 사건 2연타’가 안긴 충격은 컸고, 여성 기자들은 어디에도 ‘안전 지대’가 없다고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갈 길이 여전히 멀다. 하지만 우리는 ‘옳은’ 길을 선택해야 하고,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1) 최승영, <[기자 여론조사] 77% “윤석열 대통령 거부권 행사 잘못돼”>, 기자협회보, 2024.8.6, https://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56454
2) 김고은, <한국기자협회, 단톡방 성희롱 기자 3인 영구제명 의결>, 기자협회보, 2024.7.9, https://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56240
3) 남보라, <1000만명 본 ‘버닝썬’ 다큐…BBC처럼 못한 한국 언론의 3가지 잘못>, 한국일보, 2024.6.12, https://www.hankookilbo.com/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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