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2024-10-04
지역 언론의 꾸준한 밀착 취재, 금메달로 보답한 올림픽 영웅

지역 언론의 꾸준한 밀착 취재, 금메달로 보답한 올림픽 영웅

  • 저자 : 황민호
  • 발행일 : 2024-10-04

옥천신문은 2024 파리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우진을 유년 시절부터 기록해 왔다. ‘모든 사람은 특별하다’는 신념으로 지역 출신 인물을 꾸준히 소개해 온 것. 지역신문의 역할을 꾸준히 수행하며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는 옥천신문의 김우진 선수 취재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풀뿌리 언론은 미세하게 현미경처럼 밀착 보도한다. 그것이 일상이다. 줌렌즈를 바짝 당기면 담기는 내용이 많아지고 그만큼 심도도 깊어진다. 이는 언론에서 공론으로 나아가기 위한 포석이고, 그만큼 공론장에 다양한 사람들이 오르내린다. 어찌 보면 이는 시군 단위 풀뿌리 신문의 생존 전략이면서 지방자치제 시행 뒤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나름의 해법이기도 하다. 

 

우리 지역에서는 연합뉴스 기자 한 명이 보은, 옥천, 영동 세 개 군을 커버한다. 그런데 옥천에서만 옥천신문 기자 7명이 활동한다. 질적·양적으로 차별된 기사를 다룰 수 있고 타 지역을 훨씬 압도할 수밖에 없다. 옥천신문은 커뮤니티 저널리즘을 한다. 보통 언론에서는 돈 많고 힘 있고, 유명하고, 죄지은 사람이 주로 나오지만 풀뿌리 신문에는 그 문턱이 낮아 옥천의 모든 사람이 나올 기회가 많다. 

 

개업한 식당도 뉴스가 되고, 학생이 상을 받은 것도 뉴스가 된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도 인터뷰하며,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는 코너로 누구나 만난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라는 기치 아래 옥천의 모든 사람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며 그들의 일상을 보도한다. 본시 기자의 역할이란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끄집어내는 것이라 생각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반드시 특별한 것이 나오게 되어 있다. 

 

저인망 어선처럼 아래서부터 옥천의 사건·사고를 훑기 때문에 기사의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굳이 ‘특종’과 ‘단독’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다 특종이고 단독이기 때문이다. 제보와 민원이 이미 몰리고 있고 밑바닥 기사를 깡그리 훑고 지내기 때문에 기성 언론이 외면하는 특종은 사실 풀뿌리 신문에 즐비하다. 눈 밝은 지방 일간지나 방송사 기자, 또는 작가들은 그래서 지역신문을 구독한다. 특종의 보고기 때문이다. 대충 매주 훑어도 그냥 그대로 써도, 아니면 조금만 발전시켜서 써도 좋은 기사가 나올 것이 분명한데 이들은 지역에 오지 않는다. 주재 기자들은 보도자료 챙기고 광고 관리하는 데 여념이 없고 거점에 있는 기자들은 거기서 나오는 소식 챙기기도 버거우니 사실 지역은 기존 미디어의 저널리즘 방임 지역이다. 그 틈새를 지금 수십 년 동안 주민 속에서 뿌리내린 풀뿌리 언론이 보완하고 있다. 

 

고향의 응원 속에 자란 올림픽 영웅

 

김우진은 옥천이란 지명을 알린 최고의 ‘아웃풋’이라 할 수 있다. 옥천신문은 유년 시절부터 그에 대해 꾸준히 보도해 왔고 옥천을 떠난 이후에도 출향인으로 대회 소식을 끊임없이 전해 왔다. 빛을 발할 때만 보도한 것이 아니라 빛이 바랠 때도 외면하지 않고 어릴 때부터 꾸준히 그리고 통산 금메달을 5개 딴 지금까지 변함없이 보도해 왔다. 그래서 김우진 선수 기사만 202건이 넘는다.

 

연합뉴스 등 다른 언론사들이 올림픽 금메달에 초점을 맞춰 대량으로 기사를 쏟아낸 반면 옥천신문은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그에 대한 기사를 아카이빙해왔다. 그가 어릴 때부터 선수로서 좋은 성취를 이룰 때까지 변함없이 보도했다. 그런 라포(rapport) 형성과 아카이빙 기법은 2024년 8월 23일 바쁜 와중에도 그와의 깊이 있는 인터뷰가 가능하게 했고 어린 시절 사진까지 시간대로 배열해 독자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옥천신문 인터뷰에서 핵심 주제는 옥천과 연관된 질문을 하고 포커스를 맞춰 지역 주민들이 옥천을 더 가깝게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저 또한 이원초등학교에 양궁부가 있었기 때문에 양궁을 접할 수 있었다. 이원초는 전교생이 30명 안팎이고 올해 입학생이 3명이라고 하더라. 양궁부 모집 자체가 어려운데 옥천군 차원에서 양궁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한 ‘올림픽 직후 고향 옥천을 찾아 잔치를 열었다는데’라는 물음에 그는 “올림픽 끝나고 옥천 집을 방문했는데 고속도로 입구 빠져나오는 길목에서부터 진짜 셀 수 없이 많은 현수막을 보면서 많은 군민의 성원과 응원이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군민들의 많은 응원이 있었기에 제가 올림픽 3회 출전이라는 쾌거를 이루고 파리 올림픽에서 3관왕을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양궁을 처음 시작했던 초등학교 3학년 김우진에게 지금의 김우진 선수가 한마디 한다면’이라는 질문에 “먼 미래의 모습은 진짜 빛나는 모습이니까. 그것을 믿고 네가 생각한 대로 계속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답했다. 숱한 언론에서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김우진 선수의 인간적인 면모와 고향에 대한 애정은 옥천신문 인터뷰에서만 확인할 수 있었다.

 

옥천신문은 김우진 선수만 보도하지는 않았다. 청산면 인정리 출신 양궁 국가대표 홍승진 총감독도 빠짐없이 인터뷰했다. 홍승진 총감독은 “전국대회를 치를 수 있는 양궁장이 전국에 7개 밖에 없다. 옥천의 경우 경부선이 지나는데 역세권 경기장을 선수들이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 양궁인으로서 양궁장 건립 목소리가 감사한데 문제는 예산이 아니겠나. 개인적으로는 고향에 양궁장이 생기면 좋다”고 말했다. 

 

전국에서 회자되는 옥천 출신 인물이 옥천에 관해 발언하면 독자들은 더 친밀도를 느끼고 귀를 쫑긋하게 된다. 옥천신문에서 김우진 선수의 첫 기사는 2003년 4월 18일 ‘충북도 소년체육대회 종합 7위’로 이름만 언급됐다가 2004년 3월 27일자 필자가 쓴 기사에 <양궁 기대주 김우진>이란 제목으로 이름이 실렸다. 그 당시 김우진 선수는 이원초 6학년 선수로 전국 남녀 초등양궁대회에서 개인종합 2위를 기록했다. 이숙영 담당 체육 교사는 김우진 선수에 대해 “현재 전국 랭킹 5위 정도의 성적을 가지고 있고, 가정과 학교, 본인 자신도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대성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평가했다. 해당 교사의 말이 20년이 지난 지금 딱 들어맞은 것이다. 2004년 7월 13일에는 충북협회장기 개인전에서 5관왕을 차지했다는 기사도 게재됐다. 2004년 9월 10일에는 직접 육성 인터뷰를 했다. 그 제목이 <경모형! 우리도 있어요>이다. 옥천군 이원면 출신인 박경모 선수는 그즈음 2004년 9월 아테네 올림픽 양궁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고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는 SBS 해설위원으로 맹활약했다. 박경모 선수는 해설 도중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제 고향 후배예요’라는 말을 언급하기도 했다. 

 

금메달리스트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김우진 선수는 2004년 인터뷰 당시 이원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전국대회 개인전 3관왕을 휩쓸었다. 그 이후부터 김우진 선수의 이름이 매년 등장했다. 2006년 제35회 충북소년체전에서 4관왕을 한 소식도, 2007년 전국양궁종별선수권대회에서도 2관왕을 차지한 소식도 <이원중 김우진, 또 해내다>란 제목으로 기사가 타전됐다. <양궁 김우진 3관왕, 충북도 신기록 달성>, <신궁 김우진 선수 또 일냈다>, <박경모 후배들, 신궁 역사 잇는다> 등 매년 수십 개씩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서도 2010년 9월 17일 옥천신문 기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함께사는 세상> 코너로 19살 김우진 선수의 ‘딥’인터뷰를 다뤘는데 그 제목이 <올림픽 남자 개인전, 첫 금메달 주인공 되고 싶어요>이다. 물론 개인전 첫 금메달(남자양궁 개인전 첫 금메달은 2012년 런던올림픽 오진혁 선수가 땄다)은 아니었지만, 양궁 전 종목을 석권하며 금메달 5개를 목에 건 우리나라 최초의 주인공이 됐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 제가 여기 있을 수 있는 것은 고향에서 부모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제가 받은 소중한 유산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습니다.” 

 

김우진 선수의 양궁 국가대표 초창기 시절 그의 인성을 잘 표현해 준 대목이다. 이 인터뷰에는 고난의 시절도 나온다. 한 대목을 소개한다. 

 

“훈련을 하기 싫어서 초등학교 때 도망을 많이 다녔어요. 한때는 도저히 못 하겠다 싶었는데 이숙영 선생님이 끝까지 저를 잡아주셨어요. 만약 선생님께서 저를 그대로 놓아두셨다면 지금의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는 없을 거예요.” 

 

중학교 진학 이후에도 고민은 계속됐다고 말한다. 

 

“일 년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최준호 코치님과는 정말 친하게 지냈어요. 코치님한테 장난을 걸어도 잘 받아주셨고, 선수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주셨어요. 코치님과는 단순히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아니라 저에게는 큰형 같은 존재예요.”

 

라며. 그는 이후 진로에 대해 14년 전 기사에서 말한 바 있다. 지금은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지도자 생활을 하고 싶어요. 그 자리가 많지 않아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실업팀이든 학교에서든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운동은 즐거워야 해요. 즐길 줄 알아야 실력이 나오는데, 여기서 지도자의 역할이 큽니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동향 출신 박경모 선수에게 ‘삼촌’이란 호칭을 썼다. 

 

“목표로 삼는 선수와 대표팀에 나란히 서게 돼 영광이었습니다. 많은 충고와 조언도 해주셨고요. 삼촌과는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어요. 중학교 3학년 때 중고등부 선수들과 일반 선수들이 함께 출전한 대회가 있었어요. 그때 삼촌이 활을 넣는 ‘전통’이 많이 낡았다며 금메달 따면 바로 바꿔주겠다고 했거든요. 실제로 그 대회 50m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고 삼촌이 약속을 지키셨죠. 그때부터 삼촌처럼 되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어요.”

 

그 이후로 김우진 선수는 일취월장했다. 기사 제목부터 달라졌다.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2010년 기사에서는 <신궁 김우진, 아시안게임 8연패 쏘다>, <김우진 선수 아시안게임 양궁 개인전 금메달> 등 승승장구하며 박경모에 이어 옥천을 대표하는 신궁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고난은 있었다. 옥천신문은 김우진 선수가 <런던 올림픽 국가대표 탈락, 이변>이란 그의 아쉬운 성적도 보도해야 했지만, 괘념치 않고 2012년 6월 이원중 양궁 후배들에게 신발을 선물한 것도 <김우진 선수, 후배 사랑도 금메달감>이라고 보도했다. 안타까울 때도, 기쁠 때도 언제나 함께했던 것이다. 

 

김우진은 이내 2017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현대 양궁월드컵 파이널 대회에서 2관왕에 오르며 재기에 성공했다. 또한 2021년에는 옥천을 빛낸 제31회 옥천군민대상자로 그 이름을 올렸다. 박경모, 김우진 선수의 활약으로 2021년 4월 30일에는 군 양궁 실업팀 창단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와 국제규격 양궁장을 만들자는 기사도 나왔다. 

 

김우진 선수는 역대 최다 금메달로 정점을 찍었지만, 그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 김우진 선수에 대한 보도는 지속될 것이고, 그리고 김우진 선수에만 초점을 맞추지는 않을 것이다. 바로 지난 9월 6일 김우진 선수의 모교인 이원초등학교 주영진(6학년), 주영빈(6학년), 신동주(5학년) 선수가 제36회 회장기 전국남녀초등학교 양궁대회에서 금메달(35미터), 은메달(25미터), 동메달(20미터)을 차례로 수상하며 양궁 명문의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박경모-김우진 선수에 이은 또 다른 양궁 유망주들의 질주가 시작된 것이다. 

 

주영진 선수는 인터뷰에서 김우진 선수가 박경모 선수를 롤모델로 삼은 것처럼 “파리 올림픽에서 양궁 3관왕을 차지한 김우진 선배님처럼 훌륭한 양궁선수가 되고 싶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기사는 기록이 되고, 그 기록은 또 다른 역사를 만든다. 

 

변하지 않는 혁신은 밀착


풀뿌리 언론이 생기기 시작한 지 30년이 훌쩍 넘었다. 미디어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미디어가 출몰하고 있다. 트렌드가 바뀌고, 플랫폼도 시시각각 다변화되고 있다. 풀뿌리 언론은 신문이라는 플랫폼에만 100% 의존하기보다 지역 밀착형 콘텐츠로 다양한 플랫폼을 구성해야 할 내외적인 압박과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물꼬를 트지 않으면 공룡처럼 멸종할지도 모른다. 이미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과 벤처 기업들이 골목상권을 아우르는 하이퍼 로컬로 지역의 정보와 홍보, 상권까지 다 점령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 중이기 때문이다. 자본과 기술로 무장한 이들을 우리는 지역에 살고 부대끼면서 밀착된 정보와 콘텐츠로 막아낼 수 있다. 이는 결국 사람과 자본-기술의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밀리면 고사하기 마련이다. 

 

이런 차원에서 옥천신문의 오래된 미래는 주목할 만하다. 변하지 않은 혁신은 ‘밀착’이라고 생각한다. 현미경처럼 미세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망원경처럼 멀리 바라보기도 한다. 여러 렌즈를 갈아끼며 때론 광각으로 넓게 접사렌즈로 매우 가깝게, 그리고 망원렌즈를 갈아끼우며 멀리 조망하기도 한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멀리 보고 길게 간다. 빛을 발할 때만 주목하지 않고 일상적으로 아카이빙한다. 아카이빙하다 보면 어떤 변화가 보이고, 사회적인 의미를 찾게 된다. 

 

 

초등학교 시절의 김우진 선수 ⓒ옥천신문

 

 

현란하고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실시간으로 쏟아져 나오는 요즘이다. 뇌가 도파민에 절여지고, 이런 빠른 트렌드에 적응해야 한다고 누군가는 강변한다. 지역 안에서 지역 콘텐츠로만 구독자와 뷰를 경쟁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러려면 콘텐츠의 변질과 왜곡이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다. 지역 콘텐츠는 지역 주민들에게 충분히 소구할 수 있으면 된다.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과욕이고, 된다 하더라도 바람직하지 않다. 

 

풀뿌리 미디어, 커뮤니티 저널리즘은 공동체의 운명과 함께한다. 우리의 일상을 기록하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공론장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지역의 역사를 스스로 써 내려가는 힘을 가지고 있다. 김우진 선수의 보도는 한 단면을 보여준 것이다. 옥천에 사는 사람들에게 옥천신문은 그 자체로 목격자이고, 그 자체로 역사다. 알고리즘에 현혹되지 않고 저널리즘과 아카이빙 사이에서 커뮤니티 저널리즘은 뿌리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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