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2025-03-04
2시간 넘어도 높은 조회 수,  이용자는 진정성에 주목한다

2시간 넘어도 높은 조회 수, 이용자는 진정성에 주목한다

  • 저자 : 홍경수
  • 발행일 : 2025-03-04

숏폼 콘텐츠의 홍수 속, 반대로 긴 호흡의 영상으로 주목받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유재석의 진행으로 제작되는 토크 콘텐츠 ‘핑계고’다. 해당 채널은 여행, 시상식 등으로 내용을 넓히며 성장하고 있다. ‘핑계고’를 통해 롱폼 콘텐츠의 가능성을 진단해 본다. 편집자 주

 

 

 

제2회 핑계고 시상식 썸네일 <출처 -유튜브 화면 갈무리>

 

 

숏폼의 시대다. 대중의 허약해진 집중력을 취향 저격하고 도파민을 분출시키는 자극적인 콘텐츠가 대세다. 숏폼은 OTT 서비스를 뛰어넘는 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와이즈 앱 리테일굿즈가 실시한 2024년 8월 조사에 따르면 1인당 숏폼 콘텐츠 월평균 사용 시간은 52시간 2분으로, OTT 서비스 이용 시간 7시간 17분을 7배 이상 추월했다. 오픈 서베이의 <2023년 숏폼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숏폼 콘텐츠 시청 경험은 2022년 56.5%에서 2023년 68.9%로 늘어났다. 어쩌면 넷플릭스의 공세에 맞설 새로운 대안이 등장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숏폼 콘텐츠는 드라마는 물론 게임 시장까지 확산되고 있다. 게임 회사 크래프톤은 숏폼 영상 플랫폼 비글루에 1,200억 원을 투자했다.

 

숏폼 콘텐츠의 공세 속에 사람들은 더욱더 스마트폰에 포획된 삶을 살고 있다. 스마트폰의 알람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고, 스마트폰을 보며 출근하고, 모니터를 보며 일하는 시간에도 틈틈이 스마트폰을 본다.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하는 동안에도 스마트폰을 본다. “영국이 감자 역병(potato rot, 포테이토 롯)을 치료하려고 애쓰지만, 왜 더 치명적인 브레인 롯을 치료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인가?”는 1854년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책 《월든》에 나오는 말로, 물질적 문제에는 집중하면서도 정신적·지적 문제에 대해선 소홀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복잡한 일을 생각하지 않고 한없이 단순해지기만 하는 뇌의 상태를 ‘브레인 롯’이라고 언급한 것이다. 이 단어는 당시에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으나, 170년이 지난 최근 저품질 콘텐츠를 경계심 없이 시청하는 이들이 늘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2024년을 대표하는 단어로 브레인 롯을 선정하며 “SNS를 과잉 소비하면서 발생하는 우려를 표현하기 위한 단어로 주목받았다”라고 소개했다.


도파민 천국에서 떠오른 대안, 롱폼

 

그런데 이런 숏폼 전성시대에 롱폼 콘텐츠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연예기획사 안테나 산하 안테나플러스가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 <뜬뜬>의 2025년 2월 현재 구독자 수는 253만 명, 업로드된 동영상은 291개다. 대표 콘텐츠인 ‘핑계고’, ‘풍향고’ 시리즈 콘텐츠 중 1,000만 안팎의 조회 수를 올린 영상이 적지 않다. 작년 연말 올린 <제2회 핑계고 시상식> 영상은 조회수 850만을 기록했다. 콘텐츠의 길이가 2시간 17분으로, 숏폼 콘텐츠 전성시대에 상상하기 어려운 분량이다. 그런데도 댓글에는 호평이 가득하다.

 

“일요일 아침부터 실시간 13만 명이 보는 대한민국 유일한 시상식”

“시상식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군요? ^^ 그 어떤 공중파 연말 시상식보다 더 진실되고 재미있고 끝까지 다 본 시상식은 처음입니다”

“와… 제작진들이라고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명 한명 이름 불러주는데 갑자기 찡했어요…. 보고 있던 제가 다 감동을 받네요”

 

롱폼 콘텐츠의 매력은 무엇일까? 필자는 ‘핑계고’ 콘텐츠를 보는 내내 편안함을 느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먼저, 압축적인 편집이나 자극적인 자막, 효과음이 없어서였다. 기존의 예능은 시청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내용을 짧게 압축하여 편집한다. 자막과 효과음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도 주목 경제의 필수요소다.

 

느슨한 편집이 가능한 것은 출연자들이 한국을 대표한 최고의 출연자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지상파에서 섭외하기 어려운 출연자들이 가볍게 출연한다. 굳이 게임이나 미션을 줄 필요도 없다. 그냥 스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만 해도 된다. 제목이 말해주듯 ‘○○ 하자는 것은 핑계일 뿐이고’, 사적인 친목을 위한 만남이기에 출연자들의 만남은 계주(진행자)와 계원(시청자)의 친목 행사 같다. 기존 방송과 크게 다르다. 스타들의 진솔한 모습,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연예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적지 않다.

 

대중은 광고를 팔기 위해 끼워 맞춘 영상에 신물이 난 듯하다. 진정성 있는 콘텐츠에 목말라 있다. 마치 바닷가에 물은 많지만, 맘 놓고 마실 수 있는 물이 적은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이다. 지상파 방송 여러 프로그램에서 힘을 모아도 한자리에 모으기 어려운 톱스타들을 한자리에 모은 유재석과 연예기획사의 네트워크가 만들어낸 콘텐츠라는 점에서 지상파 제작자들의 마음은 씁쓸할 것만 같다.


느리고 생생한, 롱폼의 미학

 

롱폼 콘텐츠를 보면서 노르웨이에서 시작했던 <슬로우(Slow) TV>가 떠올랐다. 2009년 노르웨이 공영방송사 NRK에서 제작한 7시간 베르겐 철도여행을 시작으로, 12시간 장작불, 18시간 연어낚시, 134시간의 크루즈 운항 등을 편집 없이 방송했다. 배가 마을을 지나갈 때쯤 마을 주민들이 몰려나와 환영해 주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슬로우 TV>가 한국에 소개된 15년 전에도 이러한 시도를 하는 한국의 방송사는 없었다. 대신 유튜브의 ASMR이 <슬로우 TV>의 정신을 이어받았다. 롱폼 콘텐츠는 <슬로우 TV>의 DNA를 가진 유튜브 콘텐츠라 할 수 있다.

 

롱폼 콘텐츠의 또 다른 장점은 리얼타임적 특성이다. ‘풍향고’ 시리즈에서 느릿느릿 진행되는 여행의 과정을 지켜보니, 흡사 내가 옆에서 함께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베르겐 철도여행 방송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다소 지루했지만, 기차가 보여주는 풍경을 보면서 실제로 여행 함께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긴 시간을 온전히 쏟을 만큼 주변 환경이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도중에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돌아와 영상을 시청하기도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용을 따라잡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여행의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여정의 따분함과 지루함, 현지 숙소에 도착했을 때의 생경함과 이내 곧 자연스러워지는 과정, 새로운 음식을 맛보았을 때의 놀람 등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롱폼 콘텐츠는 빠른 속도로 보기에 부적절한 장르인 것이다. 따라서 제작자나 광고주로서는 실속 있는 콘텐츠가 되기도 한다.


‘가벼운’ 제작도 장점, 도전 가치 있어

 

또 하나는 제작의 경량화였다. 핑계고 시상식은 지상파 3사의 시상식을 질적인 측면에서 능가하고 있지만, 제작에 들어가는 스튜디오나 장비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단출하다. 작은 사무실에서 간이 책상과 의자를 놓고 모여있고, 카메라 역시 유튜브 방송용으로 간단히 설치돼있다. 100명 이상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스태프와는 비교할 수 없이 적은 인원으로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영상 편집을 보면 카메라가 아주 많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 있고, 편집도 현란한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단순한 편이다.

 

롱폼 콘텐츠의 성공은 지상파의 미래에 많은 암시를 준다.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 현상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해온 관습적인 제작 방식으로는 떠나가는 시청자를 잡을 수 없다. 신문사건 방송사건 시청자의 호의를 끌어낼 인물과 진정성 있는 스토리만 있다면, 롱폼 콘텐츠를 시도해 볼 만하다. 두뇌가 썩고 있는 듯한 기분에 빠지는 것은 유쾌한 경험이 아니기 때문에 이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열망도 크기 때문이다. 롱폼 콘텐츠의 등장은 숏폼 콘텐츠 전성시대에 ‘방송 같지 않은 방송’, ‘사람 냄새 나는 진정성 있는 방송’, ‘과도한 인풋 없는 단순한 방송’을 향한 방향지시등을 강렬하게 켜고 있다. 롱폼 콘텐츠의 성장이 계속될지, 반짝 성공에 그칠지는 미지수다. 그렇기 때문에 포기할 것이 아니라, 시도해 볼 의미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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