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2025-09-01
AI 활용한 ‘서프라이즈한’ 도전 진짜를 위한 가짜의 기술

AI 활용한 ‘서프라이즈한’ 도전 진짜를 위한 가짜의 기술

  • 저자 : 이상욱
  • 발행일 : 2025-08-29

MBC 장수 예능 프로그램 <신비한TV 서프라이즈>가 지난 6월 ‘Project AI’라는 새로운 시도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국내외 유수 AI 영화제 수상 감독들과 협업해 그간 실현이 어려웠던 주제를 형상화한 이번 프로젝트의 제작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신비한TV 서프라이즈>(이하 <서프라이즈>)는 MBC가 2002년부터 방영한 장수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로, 국내외 실화를 바탕으로 한 미스터리, 오컬트, 초자연 현상 등을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재연극으로 풀어내는 독특한 포맷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내레이션 중심의 전개, 강렬한 문장 클리셰, 외국인 배우들의 리액션 컷 등은 <서프라이즈>만의 고유한 연출 문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2025년 현재 1,100회를 넘긴 회차 동안, 국내외의 역사적 사건, 전설, 음모론, 미술사, 고전문학, 기이한 풍습 등 상상 가능한 거의 모든 주제를 아우르며, 수많은 실존 인물과 유명인을 소개했습니다. 이순신, 간디(Mahatma Gandhi), 히틀러(Adolf Hitler), 매릴린 먼로(Marilyn Monroe),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프란츠 리스트 (Franz Liszt) 등 시대와 문명을 넘나드는 인물을 통해, <서프라이즈>는 단순한 미스터리 재연을 넘어 ‘서사 확장형 예능’이라는 장르를 개척해 왔다고 평가받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AI는 재연 배우의 실제 연기와 움직임을 기반으로 시각적 세부 보완, 인물의 감정 묘사 강화, 역사적 공간 확장 등을 보조적으로 적용했다. ⓒMBC씨앤아이

 

 

그러나 오랜 제작 경험에도 불구하고, 기술적 제약과 촬영 환경의 한계로 끝내 다루지 못한 이야기들도 존재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우주를 테마로 한 실화’, 혹은 복잡한 공간과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극적인 서사성과 상징성은 충분했지만, 제한된 기록과 예산, 스튜디오 중심의 제작 여건 속에서 우주나 고대 유럽 미술관 같은 ‘비현실적 무대’를 사실적으로 재현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서프라이즈>는 과거에도 외계 생명체, 미확인 비행물체(UFO), NASA 음모론 등 우주를 소재로 한 에피소드를 여러 차례 시도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제작 방식과 실내 세트 중심의 촬영 환경으로는 시청자에게 ‘무한한 우주’의 광활함이나 고립감, 초월적 공간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재연이 불가능하거나 제한됐던 이야기들’을 다시 꺼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리고 AI 기반 제작 방식은 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바로 <서프라이즈> 2025년 6월 특집 ‘Project AI’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도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MBC씨앤아이 AI콘텐츠랩(이하 AI콘텐츠랩)이었습니다. 이곳은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AI와 XR 등 신기술을 콘텐츠 창작에 적용하는 ‘뉴미디어 신기술랩’으로 시작했습니다. AI콘텐츠랩에서 기획·개발한 대표 AI 콘텐츠로는 영화 <마테오>, <아트 인 더 월드>, <원모어 도파민>이 있으며, 이 작품들은 2024년 대한민국 AI 국제영화제(현 대한민국 AI 콘텐츠 어워즈)에서 대상 및 내러티브 부문 1위, 뉴욕국제영화제(NYIFA) 수상 등의 성과를 통해 AI 창작 방식의 실효성과 가능성을 입증했습니다.

 

<서프라이즈> 제작진은 이러한 AI콘텐츠랩의 기술적 노하우와 창작 방식을 바탕으로, 사내 협업을 통해 새로운 제작 실험에 착수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6월 특집 ‘Project AI’입니다.

 

AI와 방송, 서로 다른 창작 방식의 이종교배

 

‘Project AI’는 단순한 기술 실험이 아니라, 서로 다른 창작 방식을 조율·융합한 협업이었습니다. <서프라이즈> 제작진은 오랜 기간 축적된 서사 구성력과 연출 문법을 바탕으로, 실화 기반 미스터리를 정교하게 재현해 온 팀입니다. 반면 AI콘텐츠랩은 생성형 AI 기술과 새로운 시각 언어를 활용해, 한정된 제작 환경에서도 확장 가능하고 유연한 스토리 개발 및 콘텐츠 제작 역량을 축적해 왔습니다.

 

비록 출발점은 달랐지만, 사내 협업이라는 구조적 장점과 충분한 사전 논의를 통해, 양측은 서로의 창작 방식을 존중하며 협력의 틀을 만들어갔습니다. 특히 AI 기술이 기존 서사의 감정선과 정서를 어느 수준까지 따라올 수 있는지, 그리고 <서프라이즈> 특유의 연출 구조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공동으로 실험·검증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러한 협업은 단순히 ‘AI 기술을 도입한 콘텐츠 제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 방송 제작 환경에서 새로운 창작 방식을 구축해 나가는 계기이자, 향후 실험적 프로덕션을 위한 하나의 협업 시스템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Episode 1: <최초의 우주 유영 – 알렉세이의 아찔한 하루>

 

‘Project AI’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1965년, 인류 최초로 우주 유영에 성공한 소련 우주비행사 알렉세이 레오노프(Alexei Leonov)의 실화를 다뤘습니다. 이 역사적 기록 뒤에는, 우주복 팽창으로 인해 우주선으로 복귀하지 못할 뻔한 극한의 위기 상황이 숨어 있었습니다.

 

<서프라이즈> 제작진은 수년 전부터 이 사건을 콘텐츠화하고자 했지만, 광활한 우주 공간과 무중력 상태에서 벌어지는 물리적 긴박함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기란 기존 재연 기법으로는 어려웠습니다. ‘우주’라는 주제 자체가 무한한 상상력을 요하는 동시에, 물리적 재현이 거의 불가능한 영역이었기에, ‘Project AI’의 실험적 첫 번째 에피소드로 적합하다고 판단됐습니다.

 

이번 제작에서는 AI 이미지 생성 도구 미드저니(Midjourney)를 통해 우주선 외부와 궤도 장면을 시각적으로 구성하고, 해당 이미지를 기반으로 영상 생성 도구 런웨이(Runway)를 활용해 비주얼 시퀀스를 제작했습니다. 또한 AI 음성 합성 기술을 적용해, 레오노프 본인의 인터뷰 어조에 가까운 내레이션 톤을 구현함으로써 몰입감을 높였습니다.

 

특히 우주복 내부에서 드러나는 인물의 감정 변화, 우주 유영 중 정적과 공포의 긴장감은 기존 재연 배우의 연기만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는데, 이를 AI 기반 시각 언어로 보완·표현해 낸 점은 이번 실험의 핵심 성과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제작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우주복이 미쉐린 타이어처럼 부풀어 오르는 순간을 표현해 달라는 제작진의 구체적인 요청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실제 상황에 기반한 극적인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AI는 해당 장면을 프롬프트만으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재현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AI 생성 모델이 기존 학습 데이터에 기반해 콘텐츠를 생성하기 때문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거나 시각적으로 일반화된 사례가 부족한 장면에 대해선 프롬프트의 의미를 온전히 해석하고 반응하는 데 구조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장면은 수차례 이미지 시도, 프롬프트 수정, 시각 보정 작업을 거쳐 근접한 결과에 도달했으며, 이는 AI 창작이 지닌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체감한 대표적인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제작진 내부 기획회의와 CP 회의를 거쳐 정식 방영되었으며 오랜 시간 ‘불가능한 재연’으로 분류됐던 주제를 AI 기술로 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증적으로 입증한 첫 사례로 평가됩니다. 특히 본 프로젝트에는 <마테오>를 통해 AI 기반 서사 연출 경험을 축적한 마테오AI스튜디오가 참여해, AI콘텐츠랩 소속 AI 아티스트들과 공동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서로 다른 창작 문화와 도구를 기반으로 하되, ‘AI’라는 매개를 중심에 두고 협업하는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AI 비주얼 설계, 내레이션 연출, 프롬프트 최적화 등 제작 전 과정에서 방송 제작과 AI 창작의 실질적인 접점을 구현한 협업 사례로, ‘Project AI’는 AI 시대의 새로운 방송 프로덕션 가능성을 탐색한 선도적 프로젝트라 할 수 있습니다.

 

 

‘Project AI’의 첫 번째 에피소드, <최초의 우주 유영 – 알렉세이의 아찔한 하루> ⓒMBC씨앤아이

 

 

Episode 2: <모나리자 도난 사건 – 사라진 미소>

 

‘Project AI’ 두 번째 에피소드는 1911년, 루브르박물관에서 세계적인 명화 모나리자가 도난당했던 실제 사건을 중심으로, 빈센초 페루자(Vincenzo Peruggia),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등 실존 인물들이 얽힌 복합적인 서사를 다뤘습니다. 단순한 미술품 절도를 넘어, 예술계의 스캔들과 사회적 여론, 정치적 맥락까지 맞물린 이 사건은 <서프라이즈> 특유의 극적 구성을 구현하기에 적합한 소재였습니다. 이 아이템은 이진호 감독이 연출한 <아트 인 더 월드> 프로젝트의 스핀오프로 기획된 사례로, 이미 루브르 박물관과 모나리자 관련 콘텐츠를 AI 기반으로 구현한 경험이 있던 AI콘텐츠랩은 기획 초기에 스토리 설계 방식과 시각화 노하우를 기반으로 빠르게 윤곽을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이진호·이재효 감독이 협업에 참여해 AI콘텐츠랩의 AI 아티스트들과 공동 프로덕션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Project AI’ 두 번째 에피소드, <모나리자 도난 사건 – 사라진 미소> ⓒMBC씨앤아이

 

 

본격적인 제작에서는 과거 뉴스를 기반으로 공간 모델링, 실제 인물의 얼굴 생성, 미술관 공간 재현 등에 AI가 적극 활용됐습니다. 우피치미술관과 루브르박물관 내부 공간은 AI 기반의 가상 촬영 기법으로 입체적이고 몰입감 있게 재현됐으며, 인물들의 실제 사진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드로잉 합성을 통해 극의 리얼리티도 함께 끌어올렸습니다.

 

특히 2024년 제작된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AI 모델의 기술적 업그레이드로 인해 결과물의 해상도와 현실감이 비약적으로 향상됐고, 이에 따라 실존 인물을 반복 생성할 때의 얼굴 일관성 확보, 의상과 공간의 고증 디테일 보완 작업도 가능해졌습니다. 이는 단순히 시각적 품질의 문제를 넘어 ‘극화된 역사적 재연’의 신뢰성을 유지하면서도 AI가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지를 실험한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서프라이즈>의 핵심 구성 요소인 재연 배우 시스템은 이번 에피소드에도 동일하게 유지됐습니다.

 

AI는 재연 배우를 대체한 것이 아니라, 배우의 실제 연기와 움직임을 기반으로 시각적 세부 보완, 인물의 감정 묘사 강화, 역사적 공간 확장 등에 보조적으로 적용됐으며, 제작진과의 협의를 통해 AI와 배우의 공존 방식이 창작 전반에서 설계됐습니다. 방송 이후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는 AI가 배우를 완전히 대체한 것이라는 오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서프라이즈> 특유의 회차별 캐스팅 구조를 바탕으로 배우들이 각 배역을 맡아 연기한 장면을 촬영한 뒤 그 장면을 바탕으로 AI가 후반 작업에서 일부 시각 언어를 보완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모나리자 도난 사건 – 사라진 미소>는 단지 기술을 ‘적용’한 사례가 아니라 실존 인물 고증과 역사적 공간 재현의 정확도, 그리고 AI 기술과 인간 연기의 결합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탐구한 서사 실험이자 연출 실험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이는 향후 다큐드라마, 재연극, 역사 교양 콘텐츠 등 다양한 장르에서 새로운 창작 모델로 확장될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실험을 넘어 전환점이 된 방송

 

‘Project AI’는 단순한 기술 시연이 아닌, 방송 연출의 고유한 문법과 감정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AI를 도구로 활용해 새로운 창작의 확장을 모색한 결과였습니다. 특히 기존 제작진의 내러티브 감각과 AI 콘텐츠랩의 기술력이 조화롭게 만나 기술과 감각의 접점 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방송 이후 다양한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AI가 복원한 인물의 표정이나 배경에 대해 “감정 전달이 가능할 줄은 몰랐다”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었는가 하면, “AI 기술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해칠 수 있다”, “재연 배우가 아예 빠진 줄 알았다”라는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도 분명 존재했습니다. 일부 시청자들은 콘텐츠의 몰입도보다는 AI 기술의 사용 여부 자체에 더 주목하며, <서프라이즈>의 전통적인 연출 방식과 감성의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찬성과 반대, 기대와 불안이 공존하는 지금이야말로 AI 콘텐츠의 방향성에 대해 더 깊이 논의하고 설계할 수 있는 시점입니다.

 

방송이 끝난 이후 여러 방송사와 제작 관계자들로부터 직접적인 문의가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제작 기법과 협업 방식, 기술 운용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면서 이번 사례는 ‘실험적 도입’의 성격을 넘어 방송업계 전반에 새로운 상상력과 가능성을 제시한 기획으로 관심을 받게 됐습니다. 이제 막 시작된 AI 콘텐츠 제작이 기존 방송 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이 기술이 기존 창작자들에게 어떻게 활용되고, 서사를 존중하며 시청자와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실험과 고민일 것입니다. <서프라이즈>의 이번 시도가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창작의 미래를 모색하는 모든 제작자와 방송인들에게 하나의 의미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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